구포 살인 피해자, 피살 직전 경찰에 두 차례 “살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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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구 구포동 주택가에서 30대 남성이 50대 부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부산일보 3월 4일 자 8면 등 보도)과 관련해 사건 당일 피살 위험을 느낀 피해자가 경찰에 두 차례나 신고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처음부터 ‘누가 남편을 붙잡아 흉기를 들고 위협한다’고 신고했는데도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갔다. 결국 경찰이 떠난 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중년 부부는 대낮에 길거리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피해자가 ‘예고한 참변’을 막지 못한 경찰을 둘러싸고 ‘부실 대응’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건 당일 “흉기 협박” 119 신고
경찰, 분리 조치만 하고 돌아가
2차 신고에 “개인 간의 일” 무대응
잠시 뒤 50대 부부 길거리서 참변
유족 “경찰 부실 대응” 강력 반발

10일 부산 북부경찰서와 피해자 부부 유족에 따르면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일 피해 여성은 오후 3시 9분과 오후 4시 16분 두 차례에 걸쳐 112에 신고전화를 걸었다. 피해자는 첫 신고 때 “여자와 그 아들이 칼을 들고 우리 남편을 붙잡아 놨다”며 “내가 와야 해결된다며 구포역으로 나오라고 한다. 겁이 나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자가 칼을 들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살려 달라고 한다”고 호소했다.

경찰은 신고를 접수해 북부서 구포지구대 소속 경찰 2명을 현장에 보냈다. 출동 경찰관은 가해자인 모자 관계인 30대 남성 A 씨와 50대 여성 B 씨를 대상으로 몸수색을 했고 흉기가 발견되지 않자 양측을 떼어 놓는 분리조치만 한 뒤 지구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경찰이 돌아간 뒤에도 장소를 옮겨 다툼이 이어졌고, 위협받은 피해 여성은 다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오후 4시 19분에는 출동 중인 경찰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신고한 이유를 물었다. 피해자는 “남편을 놔주지 않는다”며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경찰서에 가서 얘기하는 것과 현장에서 얘기하는 건 다를 게 없다”며 “우리가 놔주라 말라는 말을 해 드릴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범행 현장 인근에 2차로 출동한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낮은 것으로 보고 철수했다. 두 번째 출동 땐 몸수색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살인사건 이후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출동 경찰이 돌아가자 집에서 흉기를 꺼내와 이날 오후 4시 40분께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유족 측은 피해자들이 A, B 씨로부터 오랫동안 일방적인 협박을 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유족 측은 오랜 원한에 의한 계획적 범행인 데다 미리 신고까지 했던 터라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참변을 막을 수 있었다고 반발한다.

유족은 “흉기를 들고 있고 살해 위협을 받는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왜 고소를 하지 않았느냐’며 사인 간의 일이라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발을 뺐다”며 “출동 경찰들의 적극적인 대처가 있었더라면 참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부서 관계자는 “분리조치, 신체수색 등을 시행한 결과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지구대 동행이 어렵다”며 “출동 당시 피해 남성이 ‘우리끼리 해결할 테니 경찰은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부산지역 한 변호사는 “흉기를 들고 남편을 붙잡아 둔다는 신고 내용만 봐도 특수협박이나 특수감금과 같은 심각한 상황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현행법상 연행이 어렵더라도 적극적으로 분리조치를 취해 신고자를 보호해야 했다”고 말했다.

안준영·탁경륜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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