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몰이해에 무형문화재 장인들 뿔났다
부산시의 시대 역행적인 무형문화재 정책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나전공예와 칠공예에 대한 신규 지정 불가와 관련한 논란이다.
1차 논란은 ‘신규 지정 불가’가 결정된 지난해 12월이었다. 당시 부산시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 분과위원장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부산일보 2021년 12월 21일 자 6면 보도). 사퇴 이유는 부산시가 비전공 조사위원들을 개입시켜 무형문화재 선정을 가로막았으며, 이런 시대 역행적 문화재 행정이 몇 년간 계속돼왔다는 것이다. 당시 부산시 해명의 핵심은 해당 2건의 경우 경남 통영에 뿌리는 두고 있는 것으로 부산에서는 역사성과 지역성이 부족해 신규 지정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나전공예·칠공예, 통영이 뿌리”
시, 신규 지정 배제 논란 확산
전국 곳곳서 장인 20여 명 지정
1970년대 부산이 나전칠기 중심
“시가 보존은커녕 소멸 바라는 꼴”
시대 역행적 정책 재고 ‘한목소리’
최근 2차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신규 지정에서 배제된 나전공예의 강정원(73), 칠공예의 김정중(67) 씨가 지역성과 역사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질의서를 보내고 전문가들도 가세한 형국이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나전공예와 칠공예가 통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서 부산에서 무형문화재 지정이 불가하다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서울 경기 강원 광주 충북 충남 전북 등 전국 곳곳에서 나전·칠공예 장인 20여 명이 이미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 나전·칠공예의 큰 산맥인 김봉룡(1994년 작고)과 이성운(2009년 작고)의 맥을 잇는 이들인데 부산의 두 사람도 이성운의 맥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부산이 나전·칠공예와 무관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찍이 삼한시대 노포동·고촌리 유적에서 각각 칠기가 출토됐으며 고촌리 칠기는 정관박물관에 전시 중이라고 한다. 1740년(영조 16)에 펴낸 <동래부지>를 보면 나전 재료 구매 기록과, 투구 갑주에 대한 옻칠 기록을 있으며, 동래부와 다대진의 옻칠한 갑주가 현재 충렬사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범어사 불상이나 불구(佛具)에 옻칠과 나전은 필수 요소였다는 것이다.
셋째 지역성과 역사성을 따지는 것은 그간 부산시 무형문화재 지정 사례를 봐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 ‘아쟁산조’의 경우 전라도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다. 이뿐만 아니라 전각장 동장각장 사기장도 그 뿌리는 김해 창원 문경으로 부산의 지역성과 역사성에 딱 들어맞는 경우가 아니지만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다.
사실 지역성 역사성에 얽매이지 않고 무형문화재를 지정·전승하는 것은 전국적 추세다. 무형문화재는 이른바 전통 시대처럼 한 지역에서 붙박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기술의 이동에 따라 지역 범위를 넘어서서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울산의 ‘옹기장’은 영덕, 대구의 ‘판소리(흥보가, 심청가)’는 전라도, 진주의 ‘장도장’은 울산에 뿌리를 둔 사례이지만 지역 범위를 넘어서서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라고 한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다른 측면에서 얘기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 근현대 가구사와 자개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부산 좌천동 가구골목에서 절차탁마한 장인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의 주제별 보고서로 발간된 <좌천동 가구거리와 재개골목>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나전·칠공예 중심지는 원산지 통영에서 부산으로 옮겨왔다. 당시 부산의 기능보유자들은 100여 명을 헤아렸으며 좌천동 자개골목에는 나전·칠 공방이 100개 이상 번창했다. 1972~73년 부산에서 문을 연 양지재활원과 부산공예학교에서 나전·칠공예를 가르쳤으며 김봉룡이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이런 부산의 수준이 반영돼 신라대 부산대 동아대의 칠공예 전문학과가 개설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1989년 부산나전칠기보존협회도 만들어졌다.
이번에 신규 지정 불가 통보를 받은 두 사람은 부산이 나전·칠공예의 중심으로 부상한 이런 근현대 변천사 속에서 1960년대부터 50년 넘게 수련하면서 나전칠기의 수준 높은 조형언어를 구축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부산에는 이 분야에서 무형문화재 수준의 장인들이 많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인 한장원 동아대 명예교수는 “다른 시·도에서는 없는 연고도 끌어당겨 보존 육성하는 형편에 부산시는 이를 보존하기는커녕 자연 소멸을 기다려 없애는 방향으로 무형문화재 정책을 역행하고 있다”며 “잘못된 심의는 재심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결된 안건은 2년이 경과한 뒤 재상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