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병상련’ 우크라 무기 지원 요청한 젤렌스키 연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세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11일 오후 5시 우리나라 국회에서 15분간 화상 연설을 했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은 50여 년 전에 전쟁을 겪었지만, 국제사회의 많은 도움으로 이겨 냈다. 우리와 함께 러시아에 맞서기를 부탁드린다”며 특히 “러시아군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한국에는 있다”며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을 위한 장갑차를 언급해 이목을 끌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무기 요청을 이미 거절한 바 있는 우리 정부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11일 국회에서 15분간 군사적 도움 요청
정권 교체 상관 없이 실질 방안 논의 필요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군 침공의 부당함과 만행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15분간의 연설 말미에서는 폐허가 된 남부 도시 마리우폴의 참상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을 보여 주기도 했다. 젤렌스키의 이러한 연설은 심리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상대국과의 역사적 공통점을 강조하는 ‘맞춤형 연설’은 각국의 마음을 사고 있다. 처음 연설한 영국 의회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전 의지를 북돋웠던 처칠 전 총리의 말을 인용해 현 존슨 총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존슨 총리는 이 때문인지 서방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지난 9일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했다. 미국 연설에선 1941년 진주만 공격과 9·11테러를 언급하며 미국인을 사로잡았다.
우리 국회 연설에서도 이런 강점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젤렌스키는 한국도 전쟁을 겪었음에도 많은 나라의 도움으로 이를 이겨 낸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동병상련의 연대감을 표현했다. 전쟁 경험을 공유하며 한국의 지원을 끌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젤렌스키가 요청한 살상 무기 지원은 우리로선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다. 국회 연설까지 초청한 마당에 대놓고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뜻 수용하기도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여론을 봐야겠지만, 국회 연설까지 한 이상 어떤 방식이든 이전과는 다른 실질적인 지원책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쟁의 고통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을 모른 체할 수는 없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폭격과 민간인 학살로 온 국민과 국토가 만신창이가 됐다. 6·25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던 우리로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호소를 더욱 가슴 아프게 여겨야 한다. 당장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도움을 줄 방안이 무엇인지 우방국과 적극적인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 살상 무기 지원은 고도의 전략적인 고려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군수물자와 의약품 등 의료와 생활물자는 지금보다 지원 범위를 크게 넓혀야 한다. 이는 정권 교체기와 상관없이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