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신고 내막 모르고 현장 출동한 경찰… 떠난 지 7분 만에 참변
구포동 사건 적극 대응했다더니
속보=부산 북구 구포동 50대 부부 흉기 피살사건(부산일보 3월 4일 자 8면 등 보도)과 관련해 경찰은 당시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안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는 신고 내용이 경찰 출동 과정에서 누락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신고 현장을 떠난 지 겨우 7분 만에 끔찍하게 살해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매뉴얼만 따지는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참변에 일조했다고 항변한다.
11일 부산 북부경찰서와 피해자 유족 등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지난달 2일 오후 3시 9분 112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흉기를 든 가해자들에게 붙잡혀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피해 여성은 알고 지내던 가해자들에게 수년 전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피해자는 경찰 신고전화에서 “여자가 계속 돈을 달라면서 협박한다”며 “(여자가 불러내)저번에도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흉기를 들고 있어서 겁이 나서 혼자서는 못 가겠다. 남편이 살려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협박받고 있다”
출동 경찰에 제대로 전달 안 돼
사안 가볍게 여길 빌미 제공
매뉴얼만 따지는 대응 도마에
가해 모자 살인 공모 문자 확보
하지만 정작 현장에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들은 예전부터 협박을 당해 왔다는 신고 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 사상서 감전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이날 오후 3시 19분 사상구에서 피해 여성과 만났고, 구포역에서 북부서 구포지구대 경찰관들에게 사건을 인계했다. 구포지구대 경찰관들과 피해 여성은 오후 3시 55분 피해 남성이 붙잡혀 있다는 북구 구포동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사상서에는 피해자들이 예전에도 여러 차례 협박받았다는 신고 내용이 전해졌지만, 감전지구대 경찰관들이 구포지구대 경찰관들에게 사건을 인계하는 과정에선 이 내용이 정확히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은 “오랫동안 흉기로 협박을 해 왔다는 사실이 누락돼 사안을 가볍게 본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날 흉기를 직접 휘두른 건 30대 남성 A 씨지만, 그의 어머니 B 씨도 공동정범으로 분류돼 함께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 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A 씨와 B 씨가 예전부터 살인을 공모했다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보했다. 이날 오전에도 B 씨는 피해 남성에게 ‘니 같은 ○○은 죽일 가치도 없다. 그래도 니는 죽어야 된다’ ‘오늘이 며칠인지 잘 봐 둬라. 오늘이 바로 니 제삿날이다’ 등 위협적인 메시지를 여러 건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1차 출동 당시 자신의 집에 있던 가해 여성 B 씨는 만나지 않았고, 집 앞으로 나온 아들 A 씨의 몸만 수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 여성의 신고 내용에서는 A 씨가 협박의 가해자였고, 피해 남성은 당시 감금 상태가 아니었다”면서 “피해 남성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고 흉기도 발견되지 않아 범죄 혐의점이 낮다고 보고 철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족은 “피해 여성이 경찰관과 동행한다는 사실을 가해자들이 전화통화 등을 통해 미리 알았는데 흉기를 가져 나올 리 만무했을 것”이라며 “흉기를 들고 협박했다는 신고 내용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고, 그들의 집 안을 들여다 보지도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가해자가 현장에서 흉기를 갖고 있지 않고 폭행 등 위험해 보이는 정황이 없었다면, 경찰관이 체포나 임의동행을 할 수 없다. 특수협박이나 특수감금 등도 신고 내용만 믿고 연행을 하기는 힘들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경찰은 “미래의 범행을 예측할 순 없다”며 항변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두 차례나 신고를 했음에도 경찰이 자리를 뜬 지 겨우 7분 만에 끔찍하게 살해됐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형식적 적법성’은 지켰으나 시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실질적 적법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최종술 교수는 “사건과 관계된 모든 당사자들로부터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보다 전문적인 조사 등을 했더라면 좀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범죄 예방 차원에서 피해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경륜·안준영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