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당신의 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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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딱 삼천 그루만 보자. 멀리서 온 친구가 기차역에 내리자 나는 그렇게 말했다. 지난주 만개한 목련이 시들자 바통 터치하듯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올봄은 벚나무 삼천 그루가 쏟아내는 폭설을 친구와 보고 싶었다. 우리 동네는 유독 벚나무가 많다. 지난 몇 년간 경쟁적으로 심은 가로수도 대부분 벚나무다. 역을 출발해 상북농공단지와 등억을 지나는 내내 환호하듯 핀 벚꽃을 보며 친구는 꿈길 같다고 했다. 친구가 떠나온 도시는 건물 숲이 만든 그늘이 아직 습하고 차다고 했다. 세 시간이면 이런 풍경을 보는구나 했다.

우리는 작천정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작천정 벚꽃길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줄곧 내 소풍 장소였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남자애랑 손등만 스치며 걸었던 곳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가 사람 구경만 하고 돌아서야 했던 곳이었다. 나는 해마다 이 꽃을 봐야 비로소 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건 내 몸속의 생체 시계 같은 것이다.

삼천 그루 맞지? 내 말에 친구는 더 될 것 같은데, 저세상 아름다움이라고 말해 나를 뿌듯하게 해주었다. 하늘을 덮은 땅 위의 구름을 보며 나는 고백처럼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함께 학교를 다녔지만 이후로 직장과 결혼 때문에 오래 소원했었다. 오래전 내가 서울을 떠나고 나서 대부분의 친구와 멀어졌다. 첫 일 년은 친구들도 나를 보러 와주었고 나도 일이 있을 때마다 가곤 했다. 하지만 이후로 그런 일들은 없어졌다. 한 달에 서너 번 하는 통화도 일 년에 한 번 할까 했다. 그건 누구 탓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일이었다. 나는 내 생활의 반경 안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게 됐다.

그리고 몇 년 전 집 앞에 ktx역이 생겼다. 그건 생각보다 작지만 큰 변화였다. 나는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 전에 나는 서울을 가기 위해서 울산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서 다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고 내려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야 했다. 출발도 전에 지치는 일이었다. 나는 이제 먼 곳의 친구들에게 세 시간이면 된다고 아침에 출발해 점심 먹고 저녁에 올라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정말 생기고 있다. 너무 금방이네. 또 올게. 그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그래도 봄은 짧다고 내일을 기약하지 말고 오늘 찬란하자고 말한다.

물리적인 거리는 얼마나 쉽게 마음의 거리가 되는지 아니까. 그래서 이 아름다운 길에도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면 꽃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것도 안다.

엘리베이터 설치 확대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7일 지하철 역사에서 또 한 명의 장애인이 숨졌다. 전동휠체어를 탄 채 승강장에서 내린 뒤 개찰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뒤로 넘어져 추락사했다. 비교가 안 되겠지만 먼 길을 돌아야 하는 엘리베이터 대신 유모차를 밀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 아찔했던 경험이 내게는 있다.

그는 왜 안전한 엘리베이터가 아닌 에스컬레이터를 탔을까.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붐볐을 거라고 추측했다. 엘리베이터는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데 장애인이 타면 한번 왔다 갔다 하는 데 오래 걸려서 바쁘신 분들이 짜증을 내는 일이 많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추가되었더라면, 급하더라도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차단봉이 설치돼 있었다면 어땠을까.

떠밀리듯 피는 벚꽃을 보며 나는 올봄, 이 찬란과 장엄을 모두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이 세상에 저절로 공평한 것은 없다. 공평하고자 하는 노력만 있을 뿐.

삼천 그루. 이 봄 당신의 반경은 어디까지입니까, 라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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