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국회 연설에 의원들 '심드렁'…주요국과 비교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국회 화상 연설에서 한국에 감사를 표하면서 군사적 도움을 호소한 가운데, 회의 장소와 참석자 수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주요국 의회나 국회 본회의장에서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도서관 대강당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주요국가 의회에서 열렸던 화상 연설에 비해 다소 초라한 장면이 연출됐다.
특히 참석자 숫자도 실망감을 자아냈다. 미국, 영국 의회 등에서는 의원들이 자리를 가득 채워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다.
지난달 23일 의회 본회의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기 어려워 의원회관에서 화상 연설을 진행한 일본 역시 상당수 의원들이 참석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지지했다.
반면 이날 한국에서 진행된 화상 연설은 곳곳에서 빈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참석한 의원들이 적었다. 만석을 이룬 주요 선진국들과 크게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연설 도중 전화를 받는 등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앞서 주요국 의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기립한 채 박수를 보내며 응원과 지지의 뜻을 드러냈으나, 이날 한국 의원들은 연설이 끝난 뒤에도 자리에 앉은 채 다소 조용하게 박수를 치는 것에 그쳤다.
이에 화상 연설을 중계한 방송사 유튜브 댓글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한국 국회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나" "모든 의원이 참석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선진국이라더니 창피하다" 등 불참한 의원들을 비판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화상 연설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광재 외통위원장이 외통위 주관으로 우크라이나 측에 제안해 성사됐다. 연설 진행에 대해 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대체로 긍정적이었으나, 외교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표명한 이들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지난달 30일 한 국회 관계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에 의원들은 자율적으로 참석하는 것으로 했다"고 전한 바 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대표해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대한민국 국회에 감사드린다"며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는 10년 이상의 시간과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 이 전쟁을 준비했다"며 "우리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려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의 피해 상황을 열거하고 러시아의 공세가 더 강해질 것이라며 한국에 군사적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배, 러시아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여러 군사 장비가 한국에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러시아에 맞설 수 있도록 대한민국에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우크라이나가 이런 무기를 받게 되면 일반 국민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호소했다.
또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라고 부른 뒤 "대한민국은 1950년대에 전쟁을 겪었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한국은 이겨냈다. 그때는 국제 사회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언급하며 한국전쟁을 상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금은 러시아가 스스로 전쟁을 멈출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며 "국제사회의 동원으로 러시아가 변화를 선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