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업 몰락·채무 급증… 스리랑카 ‘일시 디폴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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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시민들이 콜롬보 대통령 집무실 입구서 경제 파탄 책임을 물어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등에 대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스리랑카가 12일(현지시간) 대외 부채에 대한 일시적인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종이가 없어 학교 시험을 치르지 못하는가 하면 석유를 못 구해 전기도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했던 터였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 제공되기 전까지 510억 달러(62조 9000억 원)에 달하는 대외부채 상환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팬데믹으로 관광수입 94% 감소
‘일대일로’ 참여로 채무 덫에 빠져
3월 말 외환보유고 19억 달러뿐
510억 달러 부채 상환 중단키로


스리랑카 중앙은행 총재는 “하드 디폴트(민간 채권단이 전면 손실을 보는 실질적 디폴트)를 피하고자 대외 부채 지급을 일시 유예한다”라며 “제한된 외화 보유고를 연료와 같은 필수 품목을 수입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리랑카의 외화 보유고는 3월 말 기준 19억 3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사 J.P. 모건 등은 올해 스리랑카가 갚아야 할 대외 부채 규모는 70억 달러(약 8조 6000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스리랑카가 앞으로 5년간 갚아야할 대외 채무는 25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스리랑카 경제 몰락의 요인으로 관광수입 감소와 정부의 무리한 국채발행에 따른 대외채무 증가를 들 수 있다.

우선 2019년 4월 부활절 테러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광 산업이 곤두박질치면서 스리랑카는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겪었다. 스리랑카의 관광수입은 2018년 역대 최고치인 43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2020년 84.5%, 2021년에는 94%가 급감했다.

항구, 도로 등 대규모 인프라 개발을 위해 중국 등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고 외채 상환을 위해 국채를 발행한 것도 무리가 됐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스리랑카가 중국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 연결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호응하려다 ‘채무의 덫’에 빠졌다고 보기도 한다. 앞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올 1월 자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에게 채무 재조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기에 2019년 라자팍사 대통령이 포퓰리즘적 세금 감면까지 실시하면서 국가 재정이 악화됐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가 급등 악재까지 겹치며 스리랑카 경제는 경기 침체와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빠져들었다. 당국은 금리 인상과 비필수 물품에 대한 수입억제 조치를 단행했지만 3월 소비자 물가는 한 해 전보다 19%가 상승해, 아시아에서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계속되는 대통령 퇴진 운동

물가 급등과 식자재 부족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자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금지령을 발동하는 등 강경책을 썼지만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내각 교체까지 단행했음에도 반발 시위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GOTA(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go home’을 외치고 있으며, 이는 SNS의 해시태그 유행으로까지 번졌다.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3월부터 가계와 기업이 매일 정전을 겪으며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이달 들어서는 정전 시간이 13시간에 달하기도 했다. 주유소에는 줄이 늘어서고, 필수 식품은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라자팍사 대통령의 사택 밖에 몰린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한편, 스리랑카 정부는 경제난 타개를 위해 인도, 중국 등으로부터 긴급 자금을 동원하고 있다. 당국은 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협상도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촉발된 경제 위기가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신흥국들에 ‘도미노’로 강타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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