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54. 해안엔 구릉지가 없다
이진원 교열부장
일을 하다 낭패를 볼 때가 있는데, 대개는 마무리를 대충대충 한 데서 비롯한다. 비슷하게 한 마무리는 제대로 한 마무리가 아닌 것이다. 말글살이도 다를 바 없다. 비슷한 것을 그것이라 여기고 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머리 감으면 한 웅큼.. 설마 나도 탈모?” 자가진단법>
어느 기사 제목인데, 표준어려니 했던 ‘웅큼’에 배신당한 장면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웅큼: → 움큼.
*움큼: 손으로 한 줌 움켜쥘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아이가 사탕을 한 움큼 집었다….)
‘→’ 표시는 왼쪽 말이 틀렸으니 오른쪽에 있는 말로 찾아가라는 말이다. ‘웅큼’은 비표준어고, ‘움큼’이 표준어라는 얘기. 그러려니 하지 말고 반드시 사전을 찾아봐야 할 이유를 보여 준다.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동네 의원급을 가면 붙어 있는 거 보면 놀란다. 비타민 주사, 마늘 주사 등 직장인이 많은 곳에서 특히 많이 홍보한다. 플라시보 효과 아닐까 싶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에서 출연자가 한 말인데, 역시 정확하게 쓰지 않은 말이 있다. 표준사전을 보자.
*플라세보(placebo): 실제로는 생리 작용이 없는 물질로 만든 약. 젖당·녹말·우유 따위를 이용하며, 어떤 약물의 효과를 시험하거나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하여 투여한다. =가약, 속임약.
이러니 ‘플라시보’가 아니라 ‘플라세보’가 제대로 된 외래어 표기인 것. 그러면 ‘플라세보 효과’라고 해야 했느냐. 그건 또 아니다. 표준사전을 보자.
*플라세보 효과: ‘속임약 효과’의 전 용어.
즉, ‘플라시보’는 ‘플라세보’로 써야 하지만, ‘플라세보 효과’는 ‘속임약 효과’로 용어가 바뀌었다는 것. 그러니, 아예 외래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해안길에서 구릉지로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시야가 넓어져서 좋다. 저런 곳을 가두리양식장 이라고 하는 걸까?’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 역시 비슷한 함정에 걸려서 잘못 쓴 말이 보인다. 표준사전을 보자.
*구릉지(丘陵地): 해발 고도 200~600미터의 완만한 기복을 이루고 있는 지형. 평지와 산지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다. =구릉 지대·언덕땅.
*구릉(丘陵): 땅이 비탈지고 조금 높은 곳. =언덕.
이러니, 해안 길 옆에 있는 건 ‘구릉지’가 아니라 ‘구릉’이었던 것. 딱 한 끗 차이가 큰 차이로 이어지는 건 말글살이라고 다를 게 없다. jinwo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