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문학 활동 외연 넓혀 온 시인의 우화소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산산조각/정호승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네팔 룸비니의 한 조각가에 의해 부처의 고행을 모티브로 한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이 불상은 한국인 중년 남성에 의해 한국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삶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버린 이 남성의 절망 앞에서 이 조각상이 말한다. “네 삶이 하나의 종이라면 그 종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산산조각 난 내 삶이라는 종의 파편을 소중하게 거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종의 파면 하나하나마다 맑은 종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 ”(‘룸비니 부처님’ 중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정호승 시인이 올해 등단 50년을 맞았다. 시인의 문학 여정에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올해 신작 우화소설을 펴냈다. 이 책은 시에 천착해 오는 중에도 동시와 동화, 에세이 등 다양한 문학적 영역을 넓혀 온 시인의 이력과 문학관이 집대성된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시의 압축미 내면에 숨겨진 서사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재탄생시키고 ‘우화소설’이라는 형식에 담아 보다 친근한 이야기로 인간의 삶이 지닌 웅숭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17개 작품들의 주인공은 망자의 수의, 못생긴 불상, 걸레, 숫돌, 해우소의 받침돌, 네모난 수박 등 하나같이 생의 하찮은 존재들이다. 정 시인은 이 미미한 존재들이 현재의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실재하는 현실 위에 우화의 세계를 지어 올린다. 그들이 지나왔을 법한 시간과 경험, 깨달음을 통해 인간 삶의 속성,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본다. 하찮은 존재들의 속삭임이 곧 부처님의 말씀으로 떠올리고 탁, 무릎을 치는 것은 ‘우화’가 지닌 매력 때문일까. 정호승 지음/시공사/292쪽/1만 6000원. 윤현주 선임기자 hohoy@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