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검수완박 정국, 거리 두기의 정치학
논설실장
‘검수완박 정국’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첫 글자를 딴 검수완박이 정국을 집어삼켰다. 개헌 말고는 다할 수 있다는 172석의 거대 미래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출범조차 기다리지 않고 정국 주도권의 승부수를 던졌다. 취임을 전후해 새 대통령에 우호적인 ‘밀월’ 따위는 없다는 선전포고다. 권력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여야 대치를 지켜봐야 하는 수고로움과 성가심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다.
언론의 시각으로 봤을 때 권력은 뉴스거리의 강력한 생산자다. 이슈를 주도하는 게 권력이고, 권력이 세면 뉴스를 독점한다. 오후 9시 시보의 ‘땡’ 하는 소리에 맞춰 전두환 대통령이 텔레비전 뉴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땡전 뉴스’가 대표적이다. 3·9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 내각 조각 등 뉴스를 ‘몰빵’ 한 새 정부 측이 검수완박이라는 회심의 일격을 맞았다. 민주당이 존재감 부활을 통해 뉴스의 영토를 넓히면서 점차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질 판이다.
내달 윤석열 정부 출범 앞두고
민주당, 정국 주도권 승부수 던져
여소야대 정국 조기 본격화 조짐
6·1 지방선거에도 변수로 작용
유권자, 정쟁에 거리 두기 필요
정치 관찰자·비판자로 남아야
총장에서 일선 검사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조직적인 반발을 검수완박 추진 동력의 불쏘시개로 삼은 민주당은 17일 부활절 지나 다음 주부터 국회에서 본격적인 입법에 나설 참이다.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4월 안에 마무리 짓고, 5월 3일 국무회의에서 입법을 공포한다는 게 ‘부활절 공세’의 시간표다. 새 정부 조각의 백미(?)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 지명은 이에 대한 맞불로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5월 10일 취임을 앞둔 윤 대통령 당선인으로서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이라는 예상된 단계를 훌쩍 뛰어넘은 전격적인 한 법무장관 후보자 발탁이나 안철수 인수위원장과의 공동정부라는 이름도 무색하게 측근들로 내각을 구성한 데서 당혹감이 엿보인다. 안 위원장은 이번 내각에 단 한 명도 장관으로 추천하지 못함으로써 또다시 ‘철수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새 대통령의 시간이냐, 의회의 시간이냐. 김오수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수완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청와대는 “의회의 시간”이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퇴임을 엿새 앞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뜻이겠지만 앞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의회의 시간에 주목해야 한다는 행간이 읽힌다. 다음 총선인 2024년 4월 10일까지 전개될 2년간의 ‘여소야대 정국’이 파란을 예고한다.
중앙 정치판에서 지방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다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방선거가 5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영 활기가 없어서다. 지방선거를 중앙당에서 좌지우지해 온 전력으로 봤을 때 검수완박 정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검수완박에 여론의 반응이 차가운 상황이라 일단은 민주당 후보에 불리해 보인다. ‘강 대 강’ 정국에 따른 지지층 결속 효과가 나타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회의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당리당략에 골몰한 정치권이 1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3명 이상 선출하도록 해 소수정당의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을 머뭇거리고 있어서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시범실시하기로 뒤늦게 합의했다고 하니 15일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깔끔하게 처리할지 두고 볼 일이다.
마침 15일에는 마지막 거리 두기 조정안이 발표된다. 현재로서는 18일부터 사적 모임과 영업시간 제한 등 시민의 일상을 옥죄던 규제가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제 거리 두기는 사실상 막을 내리는 셈이다. 그렇다고 ‘거리 두기로부터의 거리 두기’가 마냥 온당한 일만은 아니다.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거리 두기를 스스로 늘 내면화하는 게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유권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정치에도 일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겠다. 정치권의 이전투구식 권력 다툼에 섣불리 마음을 주었다가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정치의 곁불을 쬐려 하거나 SNS에서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이 당 저 당 진영별 응원전을 펼치려 들다가는 회복 불가능한 정신적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검수완박 정국에서 거리 두기의 정치학이 필요한 이유다. 정국 흐름으로 볼 때 협치와 통합은 벌써 물 건너갔고, 다음 총선 때까지 새 정권과 거대야당의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가 내내 펼쳐질 공산이 크다. 정치가 감염병 같은 바이러스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반 유권자에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깨어 있는 정치 관찰자 혹은 비판자로 남는 게 투표로 정치를 심판하는 유권자에게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fore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