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요건에 발목 잡힌 ‘골목형 상점가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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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천동, 광안리해수욕장 뒷편 등 골목길 상권이 활성화된 부산 수영구에서 골목 상권에 마케팅부터 환경 정비까지 지원하는 ‘골목형 상점가’ 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상인들이 나타나더라도 지정 요건인 밀집도를 충족하지 못해서다.

14일 수영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부산광역시 수영구 골목형상점가 지정 및 활성화에 관한 조례’ 제정 이후 현재까지 골목형 상점가 지정 신청이 접수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일부 상인들이 필요한 서류를 모아 구청을 찾기도 했지만, ‘2000㎡ 이내 면적에 상점 30개 이상’이라는 밀집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전통시장법 밀집도 규정 따라
2000㎡ 내 30개 이상 때 가능
요건 충족 안돼 아예 신청 못해
참여 희망 상인·구청 모두 난감

골목형 상점가는 골목 상권에도 전통시장에 준하는 지원 정책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지정되면 구청은 환경 개선, 공동 마케팅 등을 지원한다. 또 온누리 상품권 가맹점으로 상점을 등록할 수도 있다. 2020년 8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전통시장법)에 관련 조항이 신설돼 관련 조례가 제정됐다.

문제는 상위법의 밀집도 요건이다. 도시철도 2호선 금련산역 1번 출구 인근에서 광안리해수욕장 방면으로 이어지는 수영로 510번 골목에서 8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남 모 씨는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고 동의까지 얻어냈지만, 밀집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상점 수는 충족했지만 약 300m 길이 골목이라 골목 폭에 따라 면적 제한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남 씨는 “구청 도움을 받으면 우리 골목 가게들이 조금이나마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수영구의회가 요건 완화에 나섰지만 밀집도는 상위법에서 정해 한계가 있다. 오는 27일 임시회 심사를 앞둔 ‘수영구 골목형 상점가 지정 및 활성화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신청 시 제출 서류에서 △토지주 50% 이상 동의 △건물주 50% 이상 동의 △상인 조직 회칙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수영구의회 오승엽 의원은 “임차인이 건물주나 토지 소유주에게 동의를 구하기 껄끄럽고, 주인들도 재산 피해를 우려하는 경우가 많아 조례를 개정하게 됐지만 상위법의 밀집도를 바꿀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수영구는 일명 ‘빵천동’이라 불리는 남천동 빵집 거리나,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골목길에 주점과 상점이 늘어선 형태로 상권이 형성돼있다. 상점이 밀집된 콤플렉스형 상가보다 골목길을 따라 주택을 개조한 상가가 늘어선 모습이 대부분이다.

상위법 시행령에 따르면 지자체가 지역 여건과 구역 내 점포 특성 등을 고려해 중소벤처기업부와 협의할 경우 밀집도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밀집도 기준에 다다른 뚜렷한 사례가 없어 수영구청이 협의에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에 수영구청은 올해 골목형 상점가 사업을 지역 특성에 적용할 방안을 찾는 용역을 실시할 계획이다.

수영구청 일자리경제과 관계자는 “’빵천동‘이나 수영팔도시장 일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상권은 법상 요건을 충족할 만큼 밀집한 형태가 아니고, 도시재생 등 다른 사업과 중복되는 내용도 있기 때문에 골목형 상점가를 어느 동네에, 어떤 형태로 지정할 수 있을지 용역을 통해 전문가 의견을 받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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