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원전 꽃'이 피었습니다만
새 정부 맞아 수명 연장·업계 수출 박차
폐기물 처리장 해결 없인 '탈원전' 외통수
지난달 말 대통령 소속 탄소중립위원회 윤순진 위원장의 사의 표명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초대 위원장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맞춰 재생에너지 중심의 국내 탄소중립 정책을 이끌어 온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윤 위원장 체제에서 국내 탄소중립 정책은 '원전 배제, 재생에너지 중심'이 근간이었다. 현재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5~30% 수준. 2030년 18%, 2050년에는 6~7% 수준까지 낮추고 나머지는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야심 찬 목표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정권교체가 되니 좋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12일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인수위는 탈원전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 전기요금이 크게 올라 2050년에는 지금보다 5배 이상 높은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사실상 위협했다.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태양광발전은 토지 용도 전환 개발이익을 노리는 돈벌이 수단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이 섞여 있다고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게다가 인수위는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2050년 탄소중립' 목표까지 조정할 수 있다고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 목표가 '기후 악당'으로 꼽히는 한국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수치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새 정부의 친원전 정책은 예고된 바다. 지난달 24일 국민의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진흥정책 추진' 세미나가 친원전 선포식이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된 권성동 의원의 솔직한 축하 인사가 인상적이었다. "정권교체가 됐는데 좋죠? 그동안 정부 방침이 (탈원전으로) 정해져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실정이었는데 기회가 왔습니다. 원전 산업과 관련해 다시는 불행한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5년 동안 뒷받침하겠습니다.” 감사원장을 사퇴한 뒤 정치인으로 변신한 최재형 의원도 "월성원전 감사를 통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얼마나 무모하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추진됐는지 목도했다. 이제 힘을 모아서 이 나라가 정상화가 되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거들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윤석열 캠프에서 탈원전 폐지 및 에너지정상화대책지원본부 정책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정 교수는 이날 윤 당선인의 공약을 △현 정부 이전의 정책 복원(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백지화 취소, 신규부지 확보,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기저발전으로서의 원자력 활용) △한·미 원자력동맹 강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수출 지원으로 압축해서 이야기했다. 이상은 원자력계 요구 사항을 충실히 담아 달성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돌아온 원전 전성시대'를 체감하는 자리였다.
■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윤석열 당선인은 '원전 최강국 건설, 2030년 원전 비중 35%, 원전 수출 확대'를 목표로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에 제동을 걸고, 한국 사회의 주요 에너지원을 원전으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이다. 원전 업계는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에 고무된 분위기다. 핵발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바빠졌다. 탈핵시민연대에 이어 부산환경운동연합은 14일 고리 2호기 가동 연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수명 연장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 '운영 허가 만료 원전에 대한 계속 운전'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원안위가 한수원으로부터 해당 보고서를 제출받아 심사에 들어가게 되지만 결국에는 '계속 운전'으로 결론 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내년 4월 가동 시한이 만료되는 고리원전 2호기의 '계속 가동'은 고리 3호기(2024년 9월)와 4호기(2025년 8월) 등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다른 원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인수위 보고 때 고리 2호기는 물론이고 3·4호기까지 계속 운전 준비 방안을 보고했다고 한다.
원전 업계의 장밋빛 기대감은 주식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원전에 사용되는 공기압축기를 제조하는 한신기계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에 힘입어 연초부터 최근 3개월여 기간 동안 주가가 3배 이상 급등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끊긴 원전 수출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는 올해 이집트 원전 사업에서 6000억 원 규모의 수주가 확정됐고, 하반기엔 폴란드·사우디아라비아·인도 원전 프로젝트 입찰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두산에너빌리티와 손잡고 8조 원대 체코 신규 원전 사업 수주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SK그룹은 빌 게이츠가 세운 차세대 원전 벤처기업인 테라파워에 투자를 검토하며 소형원전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삼성중공업은 덴마크 기업과 손을 잡고 '부유식 원자력 발전 설비'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처리장 없으면 누가 답답할까
2030년까지 원전 가동률을 35%까지 높이겠다는 새 정부의 목표는 달성 가능할까. 당선인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원전 가동률 상승과 함께 필연적으로 늘어날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시설이 이미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따르면 고리·한빛·한울원전은 2031년부터 차례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더 이상 저장할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고리 3호기, 고리 4호기와 한빛 1호기(2026년) 등이 줄줄이 수명을 연장해도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못해 운전을 못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구정회 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은 "사용후핵연료는 국민의 안전한 삶을 위해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원자력의 최대 시급한 현안이다.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 국가 로드맵 재정비와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올해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너무 늦었다. 부지 선정 절차에 13년, 영구처분시설 건설에 37년이 걸린다니 2060년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2017년과 2019년에 각각 영구 정지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사용후핵연료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문 정부가 '탈원전'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고민해서 추진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절차를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시원하게 밝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인수위 출범 한 달이 되도록 대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을 인터뷰한 뒤 <원전마을>을 쓴 김우창 작가는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지역의 책임으로, 폐기물 처리 책임은 다음 세대로 넘기는 것이 원전이다. 원전을 생각할 때 '화장실 없는 맨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도 서울만 고상한 척 서울공화국으로 살아가는 게 맞는지 원전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다시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피하면 '탈원전'의 외통수로 이어진다. 원전 폐기물 처분장이 없으면 제일 답답한 쪽은 원전 업계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