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러시아 탱크 T-80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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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은 6·25전쟁 개시와 함께 소련제 탱크 T-34 240대를 선봉에 세워 38선을 넘었다. 수류탄을 들고 육탄으로 막아내던 한국군은 T-34를 앞세운 북한군에 의해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당한 뒤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난다. 북한군 전차부대 가운데 가장 먼저 서울에 입성한 제105전차 여단은 곧바로 사단으로 승격됐다. 당시 지휘관 류경수의 이름을 따 지금도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 땅크사단‘으로 불린다고 한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소련 T-34 탱크는 나치 독일의 전차군단을 압도해 ‘모스크바의 수호신’로 불렸다. 6·25 전쟁 당시 투입됐던 T-34는 베트남 전쟁 때 북베트남군의 주력 전차로도 참전했다. 60년대 말까지 소련에서 모두 사라진 T-34 탱크가 부활한 것은 2019년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독일 전승 기념일 퍼레이드였다. 러시아는 과거 라오스로 넘겨줬던 T-34 탱크 30대를 선박과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1만 4500km를 거쳐 전승 기념일 퍼레이드에 참가시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슬라브 민족주의 부활을 통한 지지율 회복 수단으로 T-34 탱크를 사용했던 것이다. T-34 탱크는 그 이후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을 구한 전차’로 불리면서 매년 전승 기념일 행사에 참석한다. 러시아 주력 전차는 T-34에서 진화해 냉전 시대에는 T-55, 걸프전 당시에는 T-72를 거쳐 T-80U, T-90, T-14 아르마타 등이 속속 개발됐다. 야전에는 여전히 직계 후손인 T-80U가 압도적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 핵심 기갑부대인 제4 전차사단도 T-80U 전차를 중심으로 화력을 구성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1일 대한민국 국회 화상 연설을 통해 한국에도 무기 지원을 호소했다. 군수 물자 리스트에는 1996년 소련과의 경협차관을 현물로 갚는 불곰사업을 통해 도입된 T-80U 탱크 30여 대도 포함됐다. 이 탱크는 현재 한국군이 야전에서 운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사용법을 잘 알고 있고, 동부지역 대공세를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 급박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비록 북한의 핵실험 재개 위협 등 안보 정세가 심각한 상황에서 살상용 무기를 지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70년 전 한국군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소련제 탱크’가 이제는 자유 국가를 지킬 수 있는 도구로 요청된 사실은 감회가 새롭다. 동병상련을 느끼게 하는 우크라이나에 최대한의 응원과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기를 희망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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