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상 세계에도 법적인 보호망이 필요하다
김치용 동의대 게임공학과 교수 한국융합소프트웨어학회장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이렇게 당연했던 사회적 관계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스럽게 다시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타인으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살 수는 없었기에 그 관계를 온라인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온라인 라이프는 그 발전 속도에 맞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플랫폼들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문제들을 단속할 수 있는 법적인 보호망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몇 년 전부터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상의 집단 괴롭힘으로 온라인 게시판에서 특정한 사람들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소외시키거나 배척시키며, 심리적·육체적으로 괴롭힘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젊은 층, 특히 10대를 중심으로 하는 SNS에서 사이버 불링은 새로운 학교 폭력의 방식으로써 익명성, 신속성, 광범위한 확산, 시각적 충격 등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법상 사이버 불링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벌은 가능하지만 이 부분도 허점이 있다. 사이버 불링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만 처벌하기에는 그 심리적·육체적 피해가 매우 심각하며, 피해자들이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따라서 모욕죄나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기엔 그 처벌 수위가 매우 낮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저지르는 범죄인 사이버 불링과 개인이 저지르는 범죄인 온라인 스토킹,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인한 피해들은 생각보다 심각하지만, 그런 범죄들에 대한 대비가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메타버스 플랫폼이 등장한 이후 단순히 언어적인 표현에서 그쳤던 성범죄들이 아바타를 활용한 사이버 성추행으로 발전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이름을 바꾼 회사인 메타의 자회사에서 서비스 중인 소셜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에서 성희롱 등 성범죄를 막기 위해 온라인 사용자 간의 아바타에 강제적 거리두기 기능을 추가하였다. 현실을 그대로 복사한 온라인 세상을 꿈꾸며 출범한 메타버스 플랫폼은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도 그대로 복사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플랫폼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아니면 그 피해가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법률과 규제로 문제를 막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시급한 문제다.
온라인 세상들이 현실과 매우 유사하게 변해가면서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행위들이 현실의 문제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떤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앞으로 세상은 더욱더 가상의 세계에 의존하며 변화해 갈 것이다. 이러한 온라인 세상은 현실과 매우 유사하게 흘러갈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면, 현재에 적용되고 있는 규제들이 온라인 세상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범용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