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이 ‘나눔 1등 도시’가 되던 날
김상훈 독자여론부장
부산지역 나눔 현장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었다. 지난 12일 부산시청에서 부산사랑의열매의 기업 고액 기부자 모임인 ‘나눔명문기업’에 가입한 15명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공동 가입식을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전에도 지역 기업 대표 3~4명이 모여 ‘나눔명문기업’ 가입식을 한 적이 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기업들이 동시에 가입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나눔명문기업’은 1억 원 이상 기부하거나 3년 이내 기부할 것을 약정하는 중견·중소기업을 위한 전문 기부 프로그램이다.
이날 은산해운항공(주), 선보유니텍(주), (주)디알종합건설, (주)세강, (주)라움팰리스, 보성신항물류(주), (주)대한이엔지, 주식회사푸드웨이, (주)국제식품, 양산컨트리클럽(주), 의료법인 나라의료재단, (주)대방건축사사무소, 프라임텍스(주), 수근종합건설(주), (주)와이씨텍 등 부산과 경남 양산지역 15개 기업이 ‘나눔명문기업’에 합류했다.
나눔명문기업 15곳 동시 가입
‘전국 최초·최다 규모’ 새 역사
“돈을 가치 있게 쓰는 게 중요”
기업 대표들의 소감, 깊은 울림
코로나19로 어려운 이웃 많아져
나눔 물결 지속돼 훈풍 전했으면
기업 대표들은 이날 가입식에서 저마다 나눔 관련 소감을 전했다. 곱씹을수록 깊은 울림과 여운을 주는 소감 몇 개를 소개한다.
“오늘 모인 사람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은산해운항공(주) 양재생 회장), “오늘처럼 많은 기업인이 모이면 더 큰 힘이 되어 부산에 나눔의 물결을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하게 됐다.”((주) 세강 이경신 회장), “어려울수록 나눔을 통해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됐다.”((주)라움팰리스 이진수 회장), “나눔은 우리를 진정한 부자로 만들며,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주)국제식품 정창교 회장), “건축도 혼자 우뚝 서면 볼품없어진다. 사람도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주)대방건축사사무소 서상구 대표이사), “기부를 하면 그 돈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게 사용되어 남을 것이다.”(프라임텍스(주) 이인 대표이사), “돈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가치 있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주)와이씨텍 박수관 회장).
나눔명문기업에 가입한 15개 기업의 기부 약정액은 총 15억 원이다. 2019년 나눔명문기업 출범 후 15곳 공동가입은 전국 최초이고 최다 규모라고 한다. 이날 15개 기업의 공동가입으로 부산지역 나눔명문기업 수는 모두 38개가 됐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많다. 12일 기준으로 1위인 부산에 이어 서울 35개, 인천 31개, 경기 20개 순으로 집계됐다.
부산에서 ‘나눔명문기업’은 2019년 제1호 BNK부산은행을 시작으로 2020년 제2호 DSR(주)과 제3호 아이에스동서(주) 등 두 곳이 탄생했다. 지난해 23곳의 기업이 나눔명문기업에 가입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는 지난해 실적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한 영향력이 지역사회에 전파돼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일으킨 사례는 ‘아너 소사이어티’에도 있다. 사랑의열매가 운영하는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 또는 1년에 2000만 원씩 5년간 기부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두 사례가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 부산 249호인 원창선 (주)양지건설 회장은 2년 전 칠순을 맞아 출판기념회와 국악 초청공연을 열려고 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무산됐다. 그는 이 비용에 돈을 보태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에 동참했다. 경남 거제 출신인 그는 가난한 집안의 6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늘 배고픔을 겪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명석한 두뇌를 지닌 그는 국립부산한독직업학교(현 국립부산기계공고)에 입학해 삶의 전환점을 마련했고, 그 뒤 치열하게 살며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됐다. 그는 삶의 시련을 극복하고 이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부산 252호 경남시멘트 화물 박민수 대표의 가입 스토리도 감동을 줬다. 박 대표는 하역비를 아끼기 위해 40kg 시멘트를 직접 옮기고, 24년 된 5t 화물트럭과 21년 된 중형차를 아직도 이용한다. 비행기도 신혼여행과 환갑여행 때 딱 2번만 탔을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한다. 그는 20년 넘은 보험 상품이 만기가 돼 오래된 영업용 차량을 바꾸는 대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자신은 최대한 검소한 삶을 살면서 절약한 돈을 이웃을 위해 기꺼이 환원한 셈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우리 주변엔 어려운 이웃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지역 사회에 온정을 전하는 이들이 많아서 훈훈하다. 앞으로 나눔의 물결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 지역사회에 훈풍을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