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진솔하고 충실한 기록, 꾸준히 남기고 싶어”
23일 부산문화회관서 전시·특강 로이터통신 김경훈 수석기자
“제게 사진은 언어입니다. 제가 전달하는 언어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뇌리에 남기를 바랍니다.”
2019년 중남미 이민자 행렬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로이터통신 김경훈 수석기자의 강연이 부산에서 열린다. (재)부산문화회관은 퓰리처상 사진전 연계 특강 ‘퓰리처상을 빛낸 사람들: 기자정신’ 3차 특강을 23일 개최한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5월 15일까지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김 기자가 속한 로이터통신 사진팀은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캐러밴 동행 취재로 103회 퓰리처상을 받았다. 김 기자는 미국 국경지대에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모녀의 사진을 찍은 주인공이다. ‘장벽에 막히다’라는 제목의 사진은 세계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2019년 중남미 이민자 행렬 사진
‘장벽에 막히다’로 퓰리처상 수상
전 세계에 이민자 문제 이슈화
“사진의 올바른 쓰임 함께 고민”
김 기자는 퓰리처상 수상이 그렇게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회사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서 글로벌 사진부장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상을 탔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훌륭한 사진기자라는 뜻이 아니다. 이 상을 받은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잘했다는 의미인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라고요.”
2018년 수천 명의 중남미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향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캐러밴에 갱단이나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며, 국경 장벽을 높게 쌓고 군대를 배치하겠다는 발언으로 긴장감을 높였다. 하지만 김 기자가 직접 본 이민자의 실제 모습은 달랐다. “함께 이동하며 취재한 이민자들에는 가족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여성 혼자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참가한 사람도 있었어요.” 그들 대부분은 ‘고국에서의 어렵고 힘든 삶’ 때문에 캐러밴에 참여했다.
김 기자와 동료들은 이민 행렬에 오른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이 왜 이런 어려운 길을 택해야만 했는지를 사진으로 보도하고자 했다. “말과 글로 객체화된 ‘중남미 캐러밴’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해 이민자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김 기자는 현지 취재를 마치고 출국하기 전날 ‘장벽에 막히다’ 사진을 찍었다. 수천km를 이동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미국에 자신들을 받아들여달라고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였다. 갑자기 몇몇 젊은 이민자들이 국경 장벽으로 뛰어가는 일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현장에 있던 수천 명의 이민자가 장벽 앞으로 몰려갔다.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국경 반대편에 있던 미국 국경 수비대가 발사한 최루탄이 마리아 메자의 가족 앞에 떨어졌다. 김 기자는 메자가 기저귀를 찬 두 쌍둥이 딸을 데리고 최루탄을 피해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현장에서 바로 전송·보도한 사진은 캐러밴들이 어린 딸을 데리고 있는 가족을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또한 어린아이에게까지 최루탄을 발사한 미국의 강경 대응을 비난하는 여론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인권변호사의 도움으로 미국 망명이 받아들여진 메자 가족은 현재 볼티모어에 거주하고 있다. “얼마 전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쌍둥이는 어엿한 숙녀가 되었고, 언니·오빠는 미국의 평범한 10대처럼 자라고 있다고 하더군요.” 멕시코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마리아 메자는 김 기자에게 ‘볼티모어에 오면 직접 만든 타코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단다.
23일 열리는 특강에서 김 기자는 ‘우리 모두가 비주얼 스토리텔러가 되는 세상’을 주제로 강연한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누구나 사진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김 기자는 “누구나 사진기자가 되는 세상의 순기능도 있지만, 왜곡된 사진이나 억측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 누군가의 인격을 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무서운 힘을 가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사진의 본질과 올바른 쓰임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오늘 대단한 뉴스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일 더 큰 뉴스가 발생하면서 우리 기억의 우선순위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지는 것을 오랫동안 봤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대한 진솔하고 충실한 기록을 꾸준히 남기고 싶습니다.” 051-607-600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