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그 죽음들은 불공평하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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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편집부 차장

지난 12일 밤 부산 북구 구포동의 이면도로에서는 열다섯 살 중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평소처럼 늦은 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는 갑자기 들이닥친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퇴근 후 소주 3병을 마셨다는 30대 운전자의 잘못된 선택으로 열다섯 아이는 사망하고 한 가정이 망가지고 말았다.

다음 날 사고 현장 한 켠에는 과자가 가득 든 봉지가 놓여 있었고, 봉지엔 “아가야, 하늘나라에선 항상 웃고 행복하거라…”라는 애도의 글이 적혀 있었다. 현장 취재를 나섰던 본사 사진기자는 이 과자 봉지를 카메라에 담아 왔다. 지난 14일 자 〈부산일보〉 지면 편집을 하면서 이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 ‘어떤 아이였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이의 부모는 지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누군가의 작은 행동이지만 덕분에 나도 잠시나마 그 아이가 이제는 편히 쉬기를 기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세월호 참사’를 내내 떠올렸다. 어느덧 ‘슬픈 봄’은 여덟 해째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가 생중계되던 TV 뉴스 화면과 그 아래 선명했던 ‘승객 전원 구조’라는 자막, 그리고 단원고 학생들이 가족들에게 보냈던 마지막 문자 메시지 내용까지 어느 것 하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도리어 아직까지 생생하기만 해서 가슴이 무거워졌다.

잊지 않기로 했는데, 기억하기로 했는데…. 1년에 고작 하루 이틀, 하늘에 별이 된 아이들을 애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다시금 깊은 죄책감으로 빠져들었다. 지켜 주지 못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은 내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빼곡히 걸린 노란 리본들의 색이 바래는 것처럼 우리 어른들의 기억도 무뎌져 가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누구나 피할 수 없다. 누구도 언제, 어떻게 자신에게 죽음이 닥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평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 죽음이 공평하다고 할 수는 없다. 죽음이라는 결과는 같지만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 상황, 과정이 제각각 다르기에 공평할 수는 없다. 특히 그 죽음이 온전히 피해자로,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것이라면 감히 공평함을 논할 수조차 없다.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불공평의 연속이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가정 환경과 신체적 조건, 학업 수행 능력이 주어지고, 성장하면서 종종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불공평의 벽을 경험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행히 우리는 그 벽을 뛰어넘어 보자고, 그 간극을 줄여 보자고 무던히 애쓰며 산다.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소한 각자의 위치에서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며 산다.

그래서 이런 어른들의 선한 노력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소망을 가져 본다. 적어도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더 이상 없기를… 음주운전 가중처벌의 취지를 살릴 ‘윤창호법’의 완전한 입법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나아가 우리 어른들이 각자 할 수 있는 ‘어른의 몫’을 묵묵히 해내기를…. 그래서 끝내 죽음마저 공평과 정의에 가까워질 수 있기를….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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