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참여 정치로 ‘고립 시대’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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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나 혼자 볼링〉은 사회자본론의 대가인 하버드대 퍼트넘 교수의 저서다. 그는 미국 시민사회의 허약함으로 시민적 연대 및 사회자본이 약화되며 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을 ‘나 혼자 볼링 하기’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는 물리적 거리 두기와 비대면을 촉진시켜 전염병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질병을 확산시켰다. 또 이렇다 할 면역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 ‘고독 팬데믹’을 널리 퍼트리는 추세이다. 사실 코로나 경제위기보다 외로움의 사회적 공황이 훨씬 심각한 상태이다. 외로움은 알코올 중독과 비슷한 수준이며 사망위험도 30% 가까이 증가시키는 무서운 질병이다. 초연결 시대에 더 연결될수록 외로움도 더욱 커지는 역설적 본질을 갖고 있다. 갈수록 확대되는 긱(gig) 노동자들은 쿠팡, 카카오 같은 플랫폼 경제의 비대면 감시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함께 연대하면서 살아가야 할 인간을 심각하게 분열시켜 놓는 것이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발표에 의하면 한국인의 외로움 지수는 세계 9위(38%)로 선진국은 물론 같은 문화권인 중국 26%, 일본 16%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어려울 때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도움받는 정도를 나타내는 사회적지지 지표에서도 한국은 세계 하위권을 나타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외로움 늘며

관객 정치·갈라치기 크게 확산

고립 문제 해결엔 참여가 대안

정당비례대표제 뿌리내리고

원전 등 숙의 과정 국민 참여

실질적 풀뿌리 자치 조속 시행


고립 시대의 정치 특성 중 하나는 ‘관객 정치’와 ‘갈라치기 정치’이다. 일찍이 에리히 프롬은 1960년대 미국의 대중적 참여 없는 관객 민주주의(Spectator Democracy)를 고발한 바 있다. 국민의 참여가 취약한 일본의 정치를 ‘극장 정치’로 풍자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판 관객 정치의 하나라 볼 수 있다. 고립 시대에 외로움은 포퓰리즘, 불신, 이민자 등 타인에 대한 배제 및 혐오로 히틀러와 트럼프 같은 나쁜 정치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20대 대선 역시 역대급 비호감 후보 선거로 제대로 된 정책 이슈 하나 없이 네거티브 공방, 진영논리의 소모적인 측면이 많았다. 특히 차기 집권당의 이대남 분리와 여가부 폐지, 장애인 이동권 운동 공방 등은 배제와 갈라치기 정치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와 플랫폼 거대자본의 지배, 초연결 시대의 고립 문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에리히 프롬의 주장처럼 참여가 대안이다. 내가 직접 참여하는 사회를 실천하는 것이다. 위스콘신 의대의 페퍼드 등의 연구진은 건강 결정요인으로 사회경제적 격차(40%), 물리적 환경(10%), 보건의료 접근성(10%)뿐 아니라 개인의 신체활동도 40%의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경제적 격차는 주로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면 개인의 신체활동은 내가 직접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이 그렇듯 바람직한 정치와 사회의 건설도 정부뿐 아니라 나와 우리가 참여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몫이 있는 것이다.

고립의 관객사회가 아니라 참여의 민주·복지사회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는 참여민주정치가 필요하다. 소선거구의 다수대표제를 통해 거대 소수정당이 독식하는 체제에서 사표를 방지하고 실제 민의를 비례적으로 반영하는 제대로 된 정당비례대표제가 함께 뿌리내려야 한다. 정권교체기마다 당명을 바꾸는 조잡한 구태를 벗고 시대적 존립 가치가 있는 정당정치가 뿌리내리도록 독일의 에버트, 아데나워,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같은 시민참여형 정당연구소나 재단을 강화시켜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 개헌의 직접 발의권을 국민에게도 부여하고 원전 건설 등 중요 사항에 대해 국민이 직접 숙의 과정에 참여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프랑스처럼 국가공론화위원회가 설립, 운영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지방정부 및 지역공동체 운영에 주민의 직접적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독일, 스위스처럼 제대로 된 주민자치가 되도록 2020년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미약했던 읍·면·동단위 주민자치회도 대폭 권한을 강화하여 실질적 풀뿌리 자치를 시행하여야 한다. 셋째는 내가 참여하는 지역복지 체제의 강화이다. 영유아, 장애인, 노인에 대한 돌봄 권한을 기초지자체에 이양하되 재정은 정부가 책임지도록 하여 실질적인 커뮤니티케어가 추진되어야 한다. 향후 돌봄 등 사회서비스, 마을 교육, 마을 만들기 등은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관하며 동네사회보장에 대해 진정한 주민자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사회발전을 시민의 역량 강화이자 자유의 확장으로 보았다. 고립의 시대를 극복하는 힘은 대통령 등 선출직 대표자가 아닌 결국 국민의 역량에서 나오게 된다. 오늘은 4·19 62주년이다. 역량 중심의 참여형 민주·복지사회를 위해 헌신한 어제와 오늘의 ‘서번트 리더(섬김과 배려의 리더)’에게 존경을 담아 깊이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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