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빠 찬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흔히들 우리 국민들이 쉽게 용서하지 않는 비리 두 가지로 병역과 입시를 꼽는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입시 비리에 취업 비리가 따라붙기도 한다. 병역보다는 입시 비리 논란이 더 많아진 것도 시대 변화에 따른 현상이다. 권력이 강할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이 비리의 수렁에 빠지면 벗어나기 힘들다. 병역과 입시(취업)는 우리 사회에서 공정과 상식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개입되는 순간 사회적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

신조어가 널리 통용되기 전이었지만 우리 정치사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아빠 찬스는 아마도 이회창 대선 후보의 아들 병역 특혜 의혹이었을 것이다. 두 아들이 병역 면제를 위해 고의로 살을 뺐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대책 회의를 했다는 이른바 ‘병풍 사건’은 1997년과 2002년 두 번에 걸쳐 대권 도전에 나섰던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의 쓴잔을 들게 했다. 이 후보는 회고록에서 병풍 사건과 관련해 위법 사항이 없었으므로 잠시 시끄럽겠지만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자신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미숙하고 어리석었는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재테크와 육아 등의 분야에서 신조어로 가끔 등장했던 아빠 찬스를 시사용어의 반열에 올려놓은 게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다.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지명했는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딸의 입시 비리 논란이 불거지면서 극한 정쟁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의 대의를 내세워 임명을 강행했지만 조국 법무장관은 결국 아빠 찬스 논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임명 35일 만에 낙마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 당시 검찰총장으로 조국 전 장관의 아빠 찬스에 단호하게 대처하며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윤석열 당선인의 첫 내각 구성 과정에서도 아빠 찬스 논란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지명된 정호영 후보자가 자신이 병원장을 지낸 경북대 의대에 아들과 딸이 편입하는 과정에서 아빠 찬스를 사용했다는 의혹이다. 아들은 병역 특혜 논란까지 따라붙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이 “부정의 팩트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청문회로 판단해 달라”며 40년지기 친구를 엄호하고 나섰지만 쏟아지는 십자포화를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러다간 ‘내로남불’에 이어 ‘아빠 찬스’도 외신에 등장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