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깨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우린 월급 받는 프로 연주가”
20일 오전 11시 부산시청 로비에 관현악기들의 협주로 경쾌한 ‘성자들의 행진’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켜고, 플루트를 부는 9명의 연주가 모두 20대 발달장애인이다. 장애인의 날 기념 행사장에서 장애인들의 공연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 공연이 특별한 건 연주가들이 예술 활동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이다.
부민병원 ‘THE행복 오케스트라’
부산 첫 직장 소속 장애인 연주단
단원 9명 모두 20대 발달장애인
박사 과정 비롯 대학서 음악 전공
장애인고용공단 설득에 병원 결단
예술로 먹고사는 장애인 길 열어
‘THE행복 오케스트라’는 부산의 첫 사기업 소속 장애인 오케스트라다. 단원들은 예술을 본업으로 하는 직원이고, 공연은 월급을 받고 행해지는 경제 활동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연주는 장애인도 문화예술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노래이다.
19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부산본부에 따르면 ‘미취업 장애예술인 특별훈련과정’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관현악 연주가 9명이 20일 인당의료재단 부민병원(이사장 정흥태)에 정식 채용된다. 연주가들은 병원에서 월급을 받고 THE행복 오케스트라를 꾸려 활동한다. 시청 공연을 시작으로 정기 연주회를 하고, 외부 공연과 유튜브 채널 운영 등에도 참여한다. 내원 환자에게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병원 홍보도 하는 병원 직원이 되는 셈이다. 이런 형태로 문화예술 분야에 장애인이 취업한 건 부산에선 처음이다.
THE행복 오케스트라는 우리 사회에 남은 여러 벽 가운데 하나를 허무는 시도다. 장애가 있지만 세계적인 인물이 된 사례도 많이 나오지만 아직 우리 삶 속에서 장애인들이 넘어야 할 편견이나 선입견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여느 회사에 취직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인 문화예술가들이 남다른 실력을 가져도 직업으로 삼거나 취업을 하는 일은 여전히 ‘특별한 일’이다.
THE행복 오케스트라 단원 대부분은 대학에서 음악까지 전공한 프로 연주가들이다. 박사 과정을 밟는 이도 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자기만의 재능이 있기 마련이다. 발달장애인 중에도 예술에 재능 있고 꾸준히 실력을 길러 온 이가 없을 수 없다. 부산발달장애인훈련센터 김성민 센터장은 “연주 실력은 취업에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었다”며 “다만 직장 생활에는 기본적인 소양이 필요해, 단원들은 4개월 정도 직장의 의미와 직장 생활 요령을 배웠다”고 말했다.
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그동안 장애인의 문화예술 분야 취업이 막힌 건 실력이 아니었다. 장애인은 예술활동가가 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문제였고, 선입견을 깨는 데엔 실제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장애인고용공단은 문화예술 분야의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의 문을 계속 두드렸고, 그 결과 부민병원의 전향적인 결정이 이어졌다. 선민사회복지회, 하트-하트재단 등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훈련 환경을 지원해 준 후원단체들도 있었다. 이 모든 게 맞물려 직장으로서의 부산 첫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진 거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운경 부산지역본부장은 “THE행복 오케스트라는 장애인에 대한 강요된 한계를 극복한 사례”라며 “실력과 가능성이 있는 숨은 예비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