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불멸의 아이콘,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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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교보문고는 책의 날을 맞아 ‘올해의 아이콘’으로 ‘시인들의 시인’ 백석을 선정했다. 올해는 백석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일제강점기 기자, 교사로 활동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해방 이후 계속 북한에 머문 백석은 1996년 여든 다섯으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모던 보이’라는 애칭과 함께 국내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북한에 거주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한국에선 그의 시를 읽지 못했다. 백석은 1988년 납북·재북 시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를 계기로 문학사에 본격 복원됐다.

백석 연구가 송준은 10년 전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3권짜리 백석 전기인 <시인 백석>을, 2014년 시인 안도현이 <백석 평전>을 선보이는 등 그의 삶과 사랑을 조명하는 저작과 논문 등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백석 삶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거의 없다. 북한에서 백석은 아동문학 분야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전 시집 <사슴> 등에서 보여 준 ‘모닥불’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 같은 독보적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후속작의 존재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백석은 북한에서 서정시를 계속 썼을까. 백석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누구도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다. 더욱이 그가 북한 기관 문학지나 신문 등을 통해 1962년 전까지 발표한 일부 작품은 해방 전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평가다. 그러나 백석의 감수성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가 고의적으로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귀천 직전까지도 창작 작업을 이어 갔다고 한다. 다만 백석은 자신의 모든 원고를 태우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무척 안타까운 대목이다.

냉면이나 수박을 먹다가, 갈매기를 보거나 통영에 갔을 때…. 백석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살고 있다. 그를 ‘잊히지 않는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북한에 유족이 있어 무척 조심스럽지만 어느 날 문득, 불타지 않은 그의 유고작 소식이 기적처럼 찾아드는 날을 가끔 상상한다. 그 시들이 백석의 알려지지 않은 후반부 삶을 조근조근 이야기할 그날을 꿈꾼다. 천영철 문화부장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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