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리의 묘념묘상] 생이별은 싫어요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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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미디어부 뉴콘텐츠팀 기자

반려묘 우주와 부루를 가족으로 맞은 뒤부터, 이제껏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최근의 고민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피난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짊어지기에 버거워 보이는 큰 피난 가방 안에는 영문도 모르는 눈망울을 한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정신없는 와중에도 입마개까지 씌웠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집사가 된 이후여서인지, 동물을 안고 피난 가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행히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등에서 난민과 동물의 입국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호자의 품에 안긴 강아지, 고양이, 심지어 토끼까지. 이모습을 보면서 ‘전쟁은 말 못하는 동물에게도 엄청난 공포겠구나’ 처음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고민은 울진 산불을 보며 더 깊어갔습니다. 화재는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니 말입니다. 뉴스를 통해 미처 화마를 피하지 못한 동물의 주검을 접했습니다. 머리가 쭈뼛 섰습니다.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불길은 피했지만, 생이별해야 하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집이 잿더미로 변한 탓에 대피소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는데, 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는 탓이었죠. 다 타버린 집에 홀로 남겨진 강아지를 돌보러 아침저녁마다 들르거나, 혹은 대피소 대신 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파를 탔습니다. 이런 문제는 재난 때마다 반복됐습니다. 재해구조법 제3조는 구호 대상을 ‘사람’으로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행정부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에도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울진 산불 때도 이 지침이 적용됐습니다.

이러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재난이 닥치면 가족과 다름없는 반려동물이 갈 곳조차 없는 겁니다. 다행인 건, 이번 일을 계기로 행정안전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재난 상황에서 동물을 보호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국민의 안전을 위한 재난 대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

그나저나 벌써 걱정입니다. 부루는 행동이 굼뜨지만, 우주는 행동뿐 아니라 눈치도 기가 막히게 빠릅니다. 발톱을 자를 때도 귀신같이 눈치채고, 병원 갈 때도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을 뻗대고 난리를 칩니다. 재난 상황에서 집사가 당황하면 우주도 당황할 게 뻔한데, 이동장이랑 친해지는 연습부터 시켜야 할까 봅니다. 세상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일이니까요. 어쨌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이 녀석들과 생이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곧 오겠죠?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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