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국인의 스노비즘과 공정성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

필자가 영국 유학을 할 때 영국인들과 대화하면 그들은 과거를 자랑삼아 자주 이야기했다. 아마도 영국인들의 스노비즘(snobbism)은 과거 수백 년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 식민 지배했다는 우월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영국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에게 필자가 원하는 스타일을 주문했더니 옆에 있던 원장이 내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주관적인 프라이드가 지나치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무례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공정성 제도가 정착된 사회였다.

대학에서 아무리 패거리 파워가 센 교수라도 연구 부정행위가 있거나 박사 과정 지도 교수가 박사학위 학생들을 배출하지 못했을 때 페널티를 주고, 그런 경우가 여러 번 반복되면 다음 기회에 박사 과정 지도 교수에서 배제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박사 과정 지도 교수는 반드시 매년 저명한 학회지에 논문 몇 편씩 등재해야 한다. 특히 지적 재산을 중요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가 드러났을 경우 매우 엄격하다. 우리나라처럼 그냥 뭉개고 총장직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구 부정행위를 부인하는 총장이 총장직을 하겠다는 것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자살 행위로, 더 이상 자신과 학교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총장직을 버티는 무모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평가서와 추천서는 신분 보증서로 통한다. 가령 영국에서 부엌의 가스가 고장이 났을 경우 세입자가 주인에게 신청하면 가스 기사가 오는데, 만일 가스 기사가 다른 가정으로부터 항의를 여러 번 당한 기록이 있으면 일하는 데 불리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기사를 호출하는 경우에도 상사가 기록한 추천서에 과거 근무 경력이 드러나므로 가짜 증명서나 가짜 이력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평가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다. 대학원 박사 논문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연구 계획서 발표가 있는데, 지도 교수의 평가서 외에 참석한 다른 교수들의 평가서가 핵심 역할을 한다. 만일 다른 교수들의 평가서가 불합격이면 그 학생의 박사학위 연구는 보류되고 다시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만일 논문 1줄이라도 표절하면 학교로부터 퇴학당한다. 파워 있는 교수가 지도하는 학생이라도 가차 없이 학교에서 쫓겨나게 제도화 되어 있다.

영국인들은 왕족이란 서민들이 감히 가질 수 없는 지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돈과 패거리만 있으면 권력이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돈과 패거리가 있으면 정의와 공정이 따라온다고 생각하기에 돈도 없고 패거리도 없는 사람들에게 공정과 정의는 누릴 수 없는 괴물이 되어 가고 있다.

내 편이 잘못해도 잘했다고 편드는 사회에서는 공정과 정의가 뿌리내릴 수가 없다. 전관 예우 제도나 내로남불은 불공정과 부정을 부추긴다. 한국의 패거리 연줄 문화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연줄과는 무관한 인재 등용부터 과감히 해야 한다. 즉 네 편 내 편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자각과 의식 수준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발전해 왔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고방식은 합리주의이다. 합리주의야말로 공정한 문화를 만들고 공정한 사회와 공정한 제도를 만드는 씨앗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