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빨리 가기' 말고 정상의 속도도 괜찮다!
김효정 라이프부장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조치가 전면 해제되며 빠르게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식당과 주점은 24시간 인원수 제한 없이 손님을 받고, 관객이 꽉 찬 공연장과 종교 행사도 시작됐다. 손님을 유치하려는 유통가의 이벤트도 반갑기만 하다.
거리두기 해제로 빠르게 일상 회복
국내외 여행 예약 폭증, 식당 북적
영화관 예전 인기 회복 안 될 전망
OTT 영상 시청 습관 익숙해진 탓
빨리 가기·건너뛰기 등 맘대로 조절
조급증 벗어나 정상 속도 회복 필요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조사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던 여행에 대한 욕구는 실제 예매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대표 여행사 중 한 곳인 인터파크투어가 해외 입국자 격리 면제 조치 후 약 한 달간 해외 항공권 예약 추이를 분석한 결과, 해외 항공권 예약이 전월 같은 기간 대비 13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해외 항공 노선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겨우 12% 정도만 운항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133% 예약 증가는 실제로 그 몇 배의 의미를 가진다는 걸 알 수 있다.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 역시 수요가 폭발적이다.
호텔가도 예약 훈풍에 행복한 표정이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피부관리나 화장품에 대한 관심 역시 엄청나다. 온라인몰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피부·헤어 관리기, 색조화장품 검색량이 올 1월보다 몇 배나 증가했다.
코로나 인해 참았던 먹거리, 놀거리, 즐길 거리에 대한 수요 폭발은 하반기로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영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엇갈린 전망이 나오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관이다.
영화관은 코로나 기간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극장 관객 수가 2억 2668만 명인 것에 비해 지난해 2021년은 6053만 명으로 무려 70% 이상 줄어들었다.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영화관 내 취식까지 허용되니 다른 영역처럼 영화관도 빠르게 관객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코로나 2년 동안 변해버린 영상관람 형태로 인해 영화관에 대한 선호가 예전보다 급격히 하락한다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2년여 ‘강제집콕’을 강요받았던 국민을 달래준 최대 오락거리는 OTT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OTT 가입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심지어 여러 개 OTT를 가입한 사람들도 많다.
OTT 영상 시청의 특징은 기능 버튼을 활용해 재생 속도와 장면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생 속도를 빠르게 할 수도 있고 적당히 건너뛰며 원하는 장면만 골라서 볼 수도 있다. 60분 길이의 영상을 10분 안에 끝낸다거나 마지막 부분으로 가서 미리 결말을 알 수도 있다. 12부작 미니시리즈를 몇 시간 내 끝낸다는 말이 놀랍지 않은 세상이 됐다.
온 국민이 즐긴다는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는 뛰어난 편집 기술로 대작 드라마와 영화를 단 몇십분으로 압축한 영상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주인공 위주의 장면들로 구성돼 있으니 전개는 빠르고 자극적이다.
특히 이 같은 시청 습관에 익숙해진 20~40대들은 빨리 가기 버튼이 없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제 힘들다고 토로한다. SNS에는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더니 속도가 느려서 지루했다는 감상평을 흔하게 발견한다.
사실 빨리 가기에 대한 선호는 영상 시청뿐만 아니라 읽기 형태로도 이어졌다. 주변 인물은 뛰어넘고 주인공 위주로 이야기를 읽는다거나 요약본만 읽는 이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온라인이나 미디어를 통해 요약 줄거리만 읽고 그 책을 다 읽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짧은 시간에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현대 사회 성공전략이라지만, 코로나로 인해 널리 확산한 조급증은 삶의 방식까지 이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현실은 주연의 짜릿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며 짧게 편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주연과 조연, 단역이 각자 역할을 해내며 이 사회가 굴러간다. 물론 주연과 조연, 단역이 바뀌기도 한다. 빨리 가기 없이 지루한 일상을 견뎌야 결실을 얻을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을 참지 못하고 모두가 빨리 가기 버튼에 집착하게 될까 무섭다.
숲의 아름다움은 나무들 몸통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많은 잎과 잔가지가 모여서 만들어낸다. 뛰어난 작품은 주인공만의 서사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엮었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빨리 가기에서 벗어나 정상의 속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일상 회복이 시작될 것 같다. 빨리 가기에 집착하다 놓치는 작은 재미와 감동을 발견하면 영화도, 소설도, 세상도 좀 더 아름답게 즐길 수 있다.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