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대웅전 불단 아래서 묵서 180여 자가 쏟아졌다
어떤 문자는 대단하다. 그것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 때 역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부산 울산 경남 사찰 7곳의 9개 불단을 조사하면서 이중 3개 불단에서 역사를 기록한 묵서(墨書)를 새롭게 확인했다. 불단은 불상을 모시는 단으로 그렇게 눈여겨보지 않는 곳이다. 조사한 7곳의 부·울·경 사찰은 범어사 통도사 장안사 운흥사 안정사 관룡사 석남사다.
이번에 새로운 묵서를 확인한 곳은 양산 통도사 대웅전, 고성군 운흥사 대웅전, 통영시 안정사 대웅전 등 3곳이다.
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부울경 사찰 7곳 불단 조사
역사 기록 묵서 3곳서 새로 확인
운흥사·안정사 대웅전 건립 연대 48년·100년 앞당긴 묵서도 발견
그중 통도사 대웅전 불단의 중대 좌측 3번째 청판(廳板, 널판) 뒷면에서는 무려 묵서 180여 자를 확인했다. 문자가 쏟아졌다고 해야 할 정도다. 이 묵서는 대웅전 중수와 관련한 꼼꼼한 기록인데 대웅전 중수를 1644년 10월 21일 시작해 1645년 9월 15일 마쳤으며, 이후 불단 조성에 들어가 1646년 2월 8일 마무리 지었다는 내용이다. 대웅전 중건은 진희 스님이 주도했고, 불단 제작에는 대목수 상징, 부목수 광현 등 장인 스님이 참여했으며, 그 외 대웅전 중건에 참여하거나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을 소상히 기록해 놓았다.
운흥사 대웅전 불단 내부 하대목에서도 26자(1자 탈락)의 묵서가 확인됐다. 이 묵서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자료다. 경남 유형문화재 기록에 따르면 그간 운흥사 대웅전은 1731년 재건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번 묵서 확인으로 건립 연대를 1683년(강희 22년)으로, 기존에 비해 48년을 올려 잡을 수 있게 됐다.
안정사 대웅전에서도 새로운 역사적 자료가 나왔다. 불단 위의 본존불 대좌 내부에서 불상 조성 묵서가 확인된 것이다. 안정사 대웅전의 경우 기존에는 1751년 중건했다는 것 정도밖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1651년이라는, 100년을 앞당기는 묵서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그 묵서에는 ‘1651년 진주 단속사 삼존상과 함께 고성(당시 안정사는 통영이 아니라 고성에 속했다) 안정사 삼존상을 함께 조성했다’는 기록과 함께 관해 회감 성현 등 14명의 화원이 참여했다고 적혀 있다. 또 묵서에는 1752년 삼존불 개금(改金)불사에 대한 기록도 적혀 있다.
새로 묵서를 확인한 3곳과 달리 범어사 대웅전은 1993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종도리(마룻대) 묵서’가 이미 확인된 경우다. 이 묵서에는 1658년 대웅전이 중건됐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은 하나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각종 기록에 따라 애초에는 1613년 나한전, 1706년 팔상전, 1891년 독성각이 각각 따로 중건됐으며 1905년에 이르러 3개 건물이 연결된 현재 모습으로 중수했다는 것이 확인돼 있다. 장안사 대웅전의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659년, 석남사 대웅전은 1666년에 재건됐다는 것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이들 전각의 중창 연대는 한결같이 모두 17세기다. 부·울·경뿐 아니라 전국 사찰 모두에 적용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임진왜란이 거짓말처럼, 철저하게 당시 조선의 사찰 건물 거의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아우른 격동의 임란을 동아시아 현대의 전환점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2020~2024년 5개년 계획으로 ‘불교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지난해 부산·울산·경남과 전남 지역 11개 사찰의 불단을 조사해 이번에 보고서 3권을 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