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포스트 대통령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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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지역사회부장

2010년 12월 어느 날, 부산 연제구 법조타운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문재인 변호사와 마주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뒤, 잠시 숨을 돌린 그가 말했다. “검찰을 절대 믿지 마세요.” 부산의 법원과 검찰, 법무법인들까지 법조계 앞마당을 뛰어다니던 기자에게 무언가 조언을 하고 싶었던 듯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온갖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문 변호사는 그때 부산에서 ‘야인’으로 칩거하고 있었다. 2009년 5월, 김해에서 열심히 오리를 키우며 농사를 짓던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그였다.

5월 대통령 맞이 분주한 양산 평산마을
정권 이양 후 ‘자연인 문재인’의 앞날
역대 대통령과 다른 궤적 보여줄지 관심
통합·미래 위해 차별화된 삶 살아가길

12년 세월이 흐른 지금, 문재인 변호사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를 막 내주려 한다. 한 차례 고배를 마시고 대통령이 된 그는 5년이 지나 퇴임 직전인 지금까지도 44%라는 지지율을 얻고 있다. 여야 정당 지지율을 웃도는 수치로, 여느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비하면 아주 이례적인 것이다.

촛불 민심을 타고 정권을 잡은 그의 재임 기간, 대한민국은 한시라도 여유로웠던 적이 있었을까. 북한과의 ‘밀당’, 한·일 관계 악화, 신남방정책, 각종 인사 파동, 코로나19 팬데믹,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분노한 청년들의 ‘영끌’, K문화의 비상, 검찰 개혁과 ‘검수완박’까지. 나라 안팎에서 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 끝없이 우리 사회를 휘저었다.

되돌아보면, 문 변호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대통령의 자리에서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려고 최선을 다한 듯하다. 검찰 권력에 대한 불신은 재임 기간 내내 ‘검찰 개혁’을 향한 끝없는 채찍질을 불렀다. 그 과정에서 일련의 ‘조국 사태’가 불거지며 대한민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기도 했다.

한데 이 지점에서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솟는 것을 숨기기가 힘들다. 그가 집권한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은 혹시 더욱 더 분열되지 않았는가. 통합과 상생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대한민국이 전방위로 더 잘게 쪼개진 나라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동강이 난 두 진영은 더욱 숨어 들어 서로 눈과 귀를 가리며 군집을 이룬 건 아닌지, 취업 지옥과 부양 의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MZ세대 청년과 기성세대가 충돌하며 또 두 동강이 난 건 아닌지, 청년들은 다시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주저 없이 서로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닌지, 그에게 묻고 싶다.

유튜브 등 온라인 소셜미디어는 물론 수익을 내기 쉬운 ‘두 동강 언론’이 판치며 이를 부추긴다. 이쯤 되면 뭐든 하나가 된 모습은 견디기 어려운 ‘두 동강 공화국’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문재인 정부가 외교 강화와 검찰 개혁에 신경을 쏟는 사이, 교육 개혁과 국가균형 발전에는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는 비판도 많다. 자사고, 특목고 폐지에만 목을 매다가 조국 사태 후유증으로 ‘정시 강화’라는 원시적인 과거 회귀를 선택하는 악수를 둔 것 이외에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고졸’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교육 혁명은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숙제다.

국가균형발전 과제 역시 노무현 정부가 미리 주춧돌을 놓았기에, 바통을 이어 받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걸게 했다. 하지만 그가 결국 내세울 결과물 없이 ‘그럼 그렇지’하는 실망만 안긴 것은 ‘수도권 마피아’의 벽을 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힘을 다른 곳에 썼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더 슬픈 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대한민국은 통합의 길로 쉽게 들어서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아무튼 대통령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자연인 문재인’의 앞에는 어떤 날이 펼쳐질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모두 경남에서 노후를 시작한다.

최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서는 문 대통령 내외가 머물 사저가 완공됐다. 김정숙 여사는 지난주부터 매곡마을을 오가며 이삿짐을 실어 날랐다. 다음 달 10일이면 그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잊힌 삶, 자유로운 삶’을 언급하며 보통 시민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드러냈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를 쉽게 내버려 둘지 모를 일이다. 벌써부터 문 대통령이 귀향하면 평산마을을 방문하겠다는 지지자들, 반대로 그를 힐난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분위기다.

지금껏 ‘포스트 대통령’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거친 현대사를 지나 온 국민들은 어떤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원할까. 문 대통령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궤적을 그려 나가야 한다. 두 동강 나지 않은, 다양성이 존중 받으며 어우러지는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국민도 나온다.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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