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 제철인데, 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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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주문이 밀려드는데, 팔 게 없네요.”

25일 오전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의 한 바닷가 마을. 길게 뻗은 물양장을 따라 천막 지붕을 얹은 널찍한 작업선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제철 맞은 멍게(우렁쉥이) 수확 작업장이다. 작업선에선 굵은 밧줄(봉줄)에 붙은 멍게를 훑어 내느라 분주하다.

지난해 여름 고수온 떼죽음 여파
평년보다 알멍게 유통 80% 급감

그런데 토실하게 살 오른 멍게들로 빼곡해야 할 봉줄이 왠지 허전하다. 자세히 보니 멍게는 몇 개 없고, 물컹한 덩어리(일명 유령멍게) 등 각종 해적생물투성이다. 건져 올린 봉줄 대부분이 이 상태다.

어장주 이성근 씨는 “보통 5m 길이 한 봉을 털면 50kg들이 2~3상자는 너끈하다. 하지만 올해는 2~3봉을 털어야 겨우 1상자를 채울까 말까다”라며 “오늘도 겨우 주문량을 맞췄다. 이번 주가 올해 마지막 (출하) 작업이 될 듯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철 맞은 남해안 멍게 양식업계가 울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멍게를 찾는 곳은 부쩍 늘었지만, 정작 수확할 물량이 부족해 손을 놀리고 있다. 지난여름 남해안을 덮친 고수온과 빈산소수괴(산소부족 물 덩어리) 후유증으로 상당량이 떼죽음한 탓이다. 이미 출하 가능한 물량이 바닥나 이르면 내달 초 시즌을 종료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내 최대 양식 멍게 어민 단체인 멍게수하식수협에 따르면 올해 조합 공판장을 통해 유통된 알멍게는 총 56t이다. 이는 역대 최악이라던 작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특히 평년 수준이던 2020년과 비교하면 무려 80%나 급감한 수치다.

통영과 거제 앞바다에 밀집한 멍게 양식장은 250여 ha, 축구장 400개를 합친 규모다. 매년 2월부터 6월까지 출하 작업을 이어간다. 이맘때면 작업선이 있는 물양장은 멍게를 싣고 갈 활어차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올해는 작업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멍게수협 관계자는 “전체 양식장 중 절반 이상이 피해를 봤다. 전량 폐사나 다름없는 곳도 여럿 있다”면서 “당시 올해 출하를 앞둔 2년산에다, 씨앗을 받을 어미 그리고 내후년 출하할 어린 멍게까지 폐사했다.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후유증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급이 달리면서 가격은 껑충 뛰었다. 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활멍게의 경우, 50kg들이 1상자 평균 가격이 21만 원이다. 평년의 배다. 젓갈, 비빔밥에 들어가는 알멍게 가격도 3배 이상 올라 가공공장도 아우성이다. 그만큼 소비자 부담도 커졌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은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멍게수협 정두한 조합장은 “재고가 없어 매년 하던 홈쇼핑도 못 하고, 겨우 대미 수출물량만 맞추고 있다”면서 “지금 상태론 5월 초 올해 생산을 종료해야 한다. 연말까지 최소 80t 정도가 필요한데 어떻게 메울지 벌써 걱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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