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피켓 드는 일 없을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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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프랑스에 살았을 때 시위와 파업은 너무나도 빈번한 일이었다. 분명히 등교 때는 버스를 탔는데 하교 땐 시위로 인해 버스 운행이 멈춰 있고 지하철 파업도 이례적이지 않았다. 일상에 불편을 주는 이런 일들은 아무리 시위와 파업에 익숙한 프랑스인이라도 두 팔 벌려 환영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들은 시위와 파업을 최대한 존중했다. 이런 배경에는 '나도 언제든 피켓을 들 수 있고 언제든 파업할 수 있다. 그때는 당신들이 날 지지해 줘야 한다'는 연대정신이 담겨 있었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어
자선이나 시혜 대상으로 봐선 안 돼
연대로 서로에게 안전망 제공해야

복지는 구성원 모두가 누리는 혜택
책임과 위험도 서로 분담해 나가야
존엄성 확보하는 삶의 태도 필수적


올 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목표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음 달 2일 추경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의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입장 발표를 기다리며 지금은 잠정 중단한 상태지만, 지난 24일까지 이어진 그들의 시위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에 탑승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인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시위라고 명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시가 바쁜 출근길에 지하철 운행이 지연과 연착을 반복하는 가운데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다소 과격했던 시위를 바라보는 관점과는 별개로 많은 국민들이 장애인 복지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다. 그들의 사정이 안타깝다고, 그들의 삶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 제도는 사회취약층에게 행하는 자선 목적의 시혜 활동이 아니다. 복지는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가 누리는 혜택이다. 또한 책임과 위험을 분담하면서 서로에게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연대보험이기도 하다.

나는 장애인이 아닌데? 그렇게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마치 출신 성분부터 달라서 교차할 수 없는 집단으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생에서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친구는, 동료는, 이웃은, 우리와 관계한 누구든 언제라도 장애를 가질 수 있다. 복지는 어떤 조건과 불확실성에도 우리가 영위하는 삶에서 존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가 내 삶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선뜻 와닿지 않는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장애인들이 주로 자택이나 시설 등 실내에서의 생활을 주로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의 분리 정책에 있다. 지속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생활 영역을 분리하고 배척해 온 결과 두 주체는 일상에서 전혀 교류하지도 통합되지도 못한 채 거리감만 느낀다.

그런 와중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장연 지하철 시위가 노골적으로 출근 시간대를 노려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비문명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생산만을 신성시하고 노동을 생산에 종속시킴으로써 노동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일은 얼마나 비문명적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지하철 시위는 짧게는 10분, 길게는 20분가량 운행 지연을 초래했다. 주로 서울 지하철 2·3·4·5호선 출근길에 있던 시민들이 회사 지각을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사실 회사에서 직원이 10분, 20분 지각한다고 엄청난 업무 공백이 생기거나 차질이 발생하는 일은 대개 드물다. 시위가 기습적이었기에 대비할 수 없었다고는 해도 시위로 늦은 시간만큼 연장 근무를 하면 될 일이다. 사전에 예고했던 시위들은 그 시간을 피해 더 늦게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형태로 유연 근무를 하거나, 아니라면 시위에 따른 오전 재택근무를 요청해 혼잡함을 피하면 될 일이었다. 그랬다면 지하철이 이토록 붐비지도 않았다.

하지만 기업 활동을 불가침의 영역인 듯 신성화하고 사람보다 생산을 우선시하는 등 경직된 기업문화를 가진 한국사회에서 이런 유연성은 기대할 수 없다. 근로자에게도 자신의 근무 시간과 변수를 유동적으로 조정하고 대처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자율성은 없다. 획일적이고 고정적인 문화에서 개인적인 사정은 무시당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불시에 지하철 시위가 일어났을 때 친구들 몇몇은 회사에 지각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각 같은 근태 관리는 기본 중에 기본이라며 호통치는 팀장에게 혼났지만, 그나마 다행히 또래 직원들과 같이 지각해서 눈치는 덜 보였다고 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점은 지각한 직원들이 모두 20대와 30대였다는 것이다. 팀장과 부장들은 마치 시위의 무풍지대에라도 놓인 것처럼 보였다. 왜 그들은 오전 9시가 출근 시간임에도 30분 전, 심지어는 한 시간 전부터 사무실에 나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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