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대중교통과 걷고 싶은 도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부산의 인구는 1995년 이후 최근까지 거의 27년간 감소하고 있다. 물론 인구 감소의 원인은 지역경제 쇠퇴에 따른 결과다. 하지만 부산은 계속된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교통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그 결과 일인당 자동차 주행거리 증가, 차량 정체, 대기오염 및 탄소 배출량 증가 등 부산의 삶의 질은 악화하였으며, 인재 유치에서도 부산은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도 지방정부는 중앙의 도움에만 목을 맨다. 부산은 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엑스포 유치 등 국책 개발 사업 등을 통해 지역을 일으키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이 슬픈 건 “부산의 부흥을 위해 우리 스스로 계획할 힘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개화 당시 외세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자강론(自强論)의 정신이 다시금 떠오른다.

인구 감소 부산, 도시개발 변화 필요
최근 대중교통 지향 ‘TOD’ 방식 주목
5~10분 도보권 중심 시설 배치 중요

외세에 의한 외부로부터의 수동적 개혁이 지속할 수 있지 않았듯, 도시 스스로 개혁을 통해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중앙의 도움도 무용지물이다. 도시 내부 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도시를 변화·발전시켜 나가야 할 시점이다.

최근 대중교통 지향형 도시개발 방식인 ‘TOD(Transit Oriented Development)’가 주목받고 있다. 부산처럼 지난 30년 동안 외곽 확산이 진행돼 직장과 주거지가 극심하게 분리된 지역에서는 더욱 TOD형 도시로의 변화가 절실하다. 기장 오시리아 관광단지 개발에서 보듯이 ‘개발 따로, 교통 따로’의 외곽 확산 개발은 이러한 문제점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기성 시가지에서는 기껏해야 역세권의 부동산 가치를 이용하려는 대형 블록 중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도시 곳곳에 들어서 오히려 도시 내 섬(Island)으로 기능하고 있다. 심지어 보행권을 방해하면서 통과 보행을 막고 있는 지역도 상당수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자동차 통행량을 줄이고, 도시를 걷고 싶게 만드는 대중교통 중심형 도시개발인 TOD 방식을 전면 도입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미국 도시계획가인 캘도프에 의해 제시된 TOD 방식은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미 100년 전 미국의 페리는 ‘근린주구(Neighborhood Unit)’ 방식의 마을 단위 개발, 즉 초등학교 중심의 5~10분 도보권을 중심으로 공공시설을 적절히 배치하는 도시계획 생활권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생활권을 통해 주민생활의 안전성, 편리성, 쾌적성을 확보함은 물론 주민 상호 간 사회적 교류도 촉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현대에 와서 왜 이런 생활권 개념과 TOD 방식이 다시 부각되는가? 이는 자동차 중심 도시개발 방식의 부작용에 그 원인이 있다. 자동차 중심 도시에는 거리의 연결성이 끊어지는 ‘쿨데삭(Cul-De-Sac)’ 방식의 주거지 개발, 도보로 걸을 수 없는 슈퍼 블록식 단지 개발, 대중교통이 제공되지 않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 정책이 뒤따른다.

이런 방식의 개발이 지속되면 사람 중심의 생활권, 즉 걸을 수 있는 마을은 없어지고 도시의 쾌적성과 안전성은 떨어진다. 자동차 중심의 개발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캘도프는 페리의 근린주구 개념에 영감을 얻어 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으로 이를 연결하는 TOD 방식을 제안하였다. 하나의 역세권에는 도보권을 중심으로 주거, 직장, 상업, 공원·녹지 등이 밀접히 배치되고 설계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역 간 불필요한 교통 발생을 줄이면서 하나의 생활권에서는 걸을 수 있는 도시가 된다. 실제로 이에 기반해 미국 포틀랜드시, 덴버시 등 다수의 지역에서 TOD 개발이 현실화하고 있다.

TOD의 성공 조건 중 하나가 높은 인구밀도에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부산은 지하철역 중심의 역세권 개발을 추진할 만한 물적 토대가 충분하다. 지역생활권에 기반한 교통체계를 정비해 지하철, 버스, 자전거를 종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복합환승센터를 생활권 중심으로 만들어 연결하면 TOD형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나아가 신공항, 신항, 북항 등의 국가 거점과 부산·울산·경남의 산업혁신 거점을 잇는 메가시티 철도망 구축 때 철도역 주변을 중심으로 TOD 방식을 계획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TOD 방식의 도시개발은 최근 부산시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15분 도시’와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TOD형 도시개발로 부산을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일이 15분 도시 실현으로 가는 길이다. 이러한 정책이 지역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일로, 진정 부산을 자강(自强)으로 이끄는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