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울경 특별연합이 되기까지의 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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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중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드디어 국내 첫 특별지방자치단체인 부울경 특별연합이 탄생했다. 우선 감격스럽고, 한편으론 정말 긴 여정이었다는 느낌도 든다. 앞에 놓인 노정 또한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과 절박감, 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만 있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부울경 특별연합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동남권 경제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논의와 연구, 또 시범사업 등이 오랜 기간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부울경이 특별지방자치단체 시도를 전국에서 제일 먼저 했고, 그 결과로 제일 먼저 출범시키게 된 것이다. 그만큼 많은 기관과 단체, 관계 전문가들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필자도 1990년대 중반부터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세 번 연임하면서 부울경이 힘을 하나로 합쳐서 수도권과 대칭되는 광역경제권을 만들어야 하고, 금융 교육 정보 등의 분야에서 중추관리 기능을 갖추어 서울에 가지 않고도 모든 일을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다.

1997년 대선 때는 대통령 후보들을 모두 부산상의로 초청해 부산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고, 특히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DJ와는 수도권 집중에 따른 폐해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였다. 지역경제 침체의 근본 원인이 수도권 집중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수도권 집중을 억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고 지방도 골고루 발전시켜 잘살게 해달라며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법 제정과 선물거래소 부산 설립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선물거래소는 지방공약 제1호가 돼 부산에 설립될 수 있었다. DJ는 또 당선 직후에 수도권 정비계획법을 재개정해 수도권을 묶어놓았고, 그 후속조치로 대기업의 지방 분산을 위해 수도권기업 지방이전 촉진대책을 만들어 시행했다. 균형발전을 위한 법과 정책은 수도권을 억제하는 완벽한 방패막이 되지는 못했으나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 이후까지 이어지며 효력을 발휘했다.

2000년대 들어 동남권에서 3개 시·도가 힘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움직임이 상공계를 중심으로 지자체와 지방의회, 여러 연구기관, 시민단체 등에서 활발해진 것은 어떻게든 생존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자구책이었다. 특히 2010년 일본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7개 광역지자체로 결성된 간사이광역연합이 도쿄 등 수도권 집중 타파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분권 개혁을 외치고 나선 것이 큰 자극제가 됐다.

필자도 2010년 부울경 전체 광역의원들이 처음으로 만나 공동발전을 모색하는 행사에 초청돼 특강을 하면서 부울경특별시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동남권이 간사이광역연합을 벤치마킹하자는 내용의 책자를 만들고 여러 곳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3년 전에는 당시 부산대 전호환 총장을 만나서 부산대 위상이 예전보다 낮아진 것은 동남권 경제가 후퇴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부산대를 좋은 대학으로 만들려면 동남권에 간사이광역연합처럼 광역경제권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총장은 부산시장 울산시장 등을 만나 협조를 구한 뒤 동남권발전협의회를 발족시키고 공익법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경남지사가 광역연합 대신 메가시티로 하자는 의견을 내면서 특별지자체가 급물살을 탔고, 행정안전부 승인 후 공식 출범하게 됐다.

수많은 인사들의 땀과 연구에 지역주민들의 공감대까지 합쳐져 출범하는 부울경 특별연합은 이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한 개혁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책무를 떠안게 됐다. 부울경이 재도약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동남권 전체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나라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모델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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