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검수완박 중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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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검수완박’으로 온 나라가 연일 떠들썩하다. 지난 1년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은 그야말로 혼돈의 상태였다. 끝도 없이 적체되는 사건에 일선 경찰 사이에선 ‘수사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나타났고, 일부 검사와 검찰 수사관은 저녁 있는 삶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유례없는 사건 처리 지연 상황을 지켜보며, 변호사들끼리는 ‘지금이 가장 죄짓기 좋은 때’라고 개탄하기도 한다. 오히려 피의자가 조사받겠다고 수사관에게 연락해도 깜깜무소식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장에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커졌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로운 제도 실행 후 현실적으로 드러난 문제를 반영하여 조만간 형사 사법 시스템을 정비하리라 생각했는데, 지금 여야의 논의를 보니 한참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 같다. 검찰 개혁은 ‘경찰이 잘났네, 검찰이 잘났네’의 능력이나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검찰 한쪽으로 치우친 막강한 권한을 감시와 견제로 잘 분산하고 제대로 된 사법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수사권 조정, 형사사법 체계 혼란

경찰 수사부서 기피 현상 심각해져

범죄자만 활개 치고, 피해자는 한숨

국민 기본권 보호에 긍정적 효과 의문

여야 정치권 담합으로 졸속 처리 안 돼

민생 외면한 일방적 추진은 명분 상실


여야가 일시 합의했었던 검수완박의 중재안을 살펴보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되, 당장은 현행 검찰에게 허용된 6개 중요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중 부패·경제 범죄를 뺀 4개 범죄 수사권을 우선 폐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지금 여야가 논의하고 있는 6대 범죄는 일반 서민에게는 큰 이해관계가 없다. 6대 범죄 중 뭐를 뺄지 넣을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재안에는 무엇보다 수사권을 몰아줘 비대해진 경찰 수사권에 대한 견제나 감시 장치가 없다. 둘째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사문화시키고, 범죄의 단일성, 동일성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형사사법 체계에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중재안에 의하면 검사는 본건 범죄 수사를 통해 상당 정도 증거를 확보하였음에도 단일성·동일성 범주 외라면 수사를 할 수가 없다. 단일성과 동일성이라는 그 애매모호한 경계를 누가 정한단 말인가.

검찰개혁은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70년간 이어 온 형사사법 체계를 완전히 새로이 설계하는 중차대한 사안으로서, 현장의 소리를 듣고 형사사법 전반에 대해 충분히 검토되어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지,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할 법안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일이 왜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인지 일반 국민으로서는 선뜻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단 한 번이라도 범죄 피해자가 되어 고소를 진행해 본 국민으로서는 지금 현장의 문제에 대해 무릎을 치며 공감할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된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사법 현장의 상황은 심각하다. 경찰의 업무 과다로 사건 처리는 지연되고, 급기야 고소장을 접수하러 가면 “고소장이 요건이 안 맞네”라며 증거를 찾아오라고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피해자 조사 한번 하고, 몇 달 동안 깜깜무소식이다가 그 사이 피고소인 주소가 이전되었다고 타관으로 사건을 이송하고 도무지 사건을 처리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 조사 입회를 들어가 보면 일선 경찰은 쌓이는 사건 앞에 죽을상이고, 겨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해도 검찰에서 보완 수사하라고 사건 돌려보내면 그렇게 몇 번 핑퐁을 주고받다가 허송세월이 지나간다. 또 혐의가 없다고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해서 고소인이 이에 대해 이의를 하면, 검찰은 그 사건을 받아서는 불송치 결정을 한 그 담당 수사관에게 또 보완수사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미 혐의 없다고 불송치 결정을 한 담당 수사관은 도무지 그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의지가 없다. 경찰과 검찰이 그렇게 사건을 핑퐁하고 주고받는 사이 사건번호는 수차례 바뀌고, 그 사이 범죄자는 활개를 치고 다닌다. 피해자들은 도대체 언제 사건이 처리되느냐고 한숨만 쉬는 것이다.

이렇듯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줬는지 의문인 상황에서, 현장을 제대로 점검하고 제도의 허점을 개선하지는 못할망정, 극단적인 검수완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형사사법 시스템에 큰 공백만 초래할 뿐이다. 중재안은 개정안의 시행일을 공포된 날로부터 4개월 후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검찰의 수사권 폐지 대상인 선거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는 6개월로 짧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발생하는 선거범죄는 수사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야가 오랜만에 중재안 합의를 했다 해서 놀랐는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서두르면 실수하기 십상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검수완박 중재안은 반드시 다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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