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주택가 양조장에서 태어난 ‘동래아들 막걸리’ 일냈다!
“‘동래아들 막걸리’는 제 ‘부캐(평소의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입니다. 부캐!”
동래구 사직동 주택가 한가운데 3층 건물에 양조장이 차려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런데 하루 생산량 700~1000병 규모의 이 작은 양조장 ‘기다림’이 제대로 일을 냈다. 이달 열린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 탁주-생막걸리 부문에 출품한 ‘동래아들 막걸리’가 대상을 수상한 것. 주류업계 대기업인 국순당 등과 나란히 대상의 자리에 올랐다.
‘동래아들 막걸리’는 100% 국내산 쌀을 이용해 풍부한 쌀의 단맛을 느낄 수 있고, 감칠맛의 극대화를 위해 두 번 빚어낸 이양주 막걸리이다.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 출품
대기업 국순당 등 공동 대상 영예
1인 스타트업 출발한 ‘기다림’
조태영 대표 8년 집념 결실
“술에 스토리 입히는 작업 할 것”
양조장 ‘기다림’의 조태영(40) 대표는 “기라성 같은 대기업 제품 틈바구니에서 입선이나 하겠나 싶어 그간 출품을 못 했다”며 “맨땅에 헤딩하듯 출품해 내놓은 첫 작품이 이렇게 좋은 소식 안겨 줄 줄 몰랐다”며 뿌듯해했다.
바텐더를 동경하던 조 대표는 2003년 군대를 다녀오자마자 일본의 바텐더기술학교로 유학을 떠나면서 술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 가서 푹 빠진 건 바텐더가 아니라 소믈리에였다. 증류주뿐만 아니라 식음료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그는 5년 넘도록 프랑스 등지의 와이너리까지 돌아다니며 허드렛일을 하면서 일을 배웠다.
그렇게 쌓은 술 내공으로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2014년에 차린 게 1인 스타트업 ‘제이케이크래프트’다.
조 대표가 한국에서 승부를 보기로 한 분야는 막걸리. 그는 “유럽에는 ‘개러지 와인’이라고 조그만 차고를 개조해서 일년에 와인 몇 병 만들지 않는 양조장도 많은데 생산자의 철학을 높이 사 병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레어한 와인이 나온다“며 ”프랑스에서 포도라면, 한국에서는 쌀로 승부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했다.
부산시로부터 지역특산주 1호로 인정받고 2016년 사직동에 양조장까지 차렸다. 막걸리를 빚는다고 하면 한복을 입은 고상한 장인을 떠올리는 게 싫어 보란듯이 고향 동네에 양조장을 차린 것이다.
물론, 도심 양조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택가에 양조장 허가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관공서는 1년 넘게 허가를 미뤘다. 호기심에 찾아와 ‘전통주를 배워 보겠다’던 직원 중에는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양조 작업을 못 견디고 야반도주한 이도 있었다.
그래도 막걸리는 우리 곁에서 언제든 부담없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캐주얼한 술이라는 걸 보여 주고 싶어 외부 강의까지 뛰어가며 꾸역꾸역 적자를 메워 온 조 대표다.
그렇게 낮에 동네에서 술을 빚고 밤이면 판로를 찾아 주점으로 나서는 생활이 수년간 이어진 2020년에 조 대표는 ‘동래아들 막걸리’를 론칭했다. 부산 쌀로 만든 막걸리를 부산의 스토리를 담은 로컬푸드로 만들겠다는 조 대표의 야심이 현실이 된 것이다.
막걸리 이름으로 붙인 ‘동래아들’은 이른바 조 대표의 ‘부캐’다. 어려서부터 일가가 모두 사직동과 초읍동에 살아왔으니 자신이야말로 동래 아들이라는 게 그의 주장. 조 대표는 “고루한 장인이 아니라 동네 손재주 좋은 총각이 맛있게 빚어서 대접하는 술로 알려지고 싶다”고 했다.
8년 넘게 이어진 술 빚는 작업에 이제는 손목도 제대로 안 돌아간다는 조 대표지만 ‘동래아들 막걸리’를 대중적으로 알려 스토리를 입히겠다는 열정만은 아직 식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제조업체 대표가 아니라 문화업체 대표라는 생각으로 일한다”며 부산의 대학과 산학협력으로 우리 술을 빚어 보고 직접 우리 음식과 페어링을 해 보는 관광 코스 개발 등 술에 스토리를 거듭 입혀 가는 작업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