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통영 안황주민 “스톨트호 이대로 못간다”…출항 저지 점거 농성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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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안정·황리 지역 주민들이 고위험 폐기물만 처리하고 약속 한 수리 공사 대신 해체를 위해 부산으로 떠나기로 한 2만 5881t급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인란드’ 출항 저지에 나섰다. 한 주민 성동조선해양 관계자들에게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 안정·황리 지역 주민들이 고위험 폐기물만 처리하고 약속 한 수리 공사 대신 해체를 위해 부산으로 떠나기로 한 2만 5881t급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인란드’ 출항 저지에 나섰다. 한 주민 성동조선해양 관계자들에게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지역 경제에 도움 된다고 해서 비난을 감수하며 받아줬더니, 이제 볼일 다 봤으니 나 몰라라 간다네요. 이대로는 절대 못 보냅니다.”

30일 오전 7시 20분께 경남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 내 성동조선해양 2야드 안벽. 검붉은 녹물로 얼룩진 대형 화물선을 두고 고성이 오간다.

안정산단 인근 안정·황리 지역 주민과 부산지역 선박해체 업체 관계자들이다.


2019년 9월, 울산항 정박 중 발생한 폭발 사고로 1년 가까이 방치되다 잔존 폐기물 처리와 선체 수리를 위해 이곳으로 온 2만 5881t급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인란드(Stolt Groenland)’호.

사고 당시 선내에는 소량만 유출돼도 인체에 치명적인 스티렌모노머(SM)를 비롯해 수십 종의 유해 화학물질 2만 3000t이 실려 있었다.

이를 안전하게 처리하면서 선체 수리를 병행할 조선소를 찾던 선사는 통영 안정공단 내 HSG성동조선해양을 낙점했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난색을 표했다. 특히 환경단체와 어민들은 “예인 과정에 심각한 해양오염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청정해역 이미지 훼손은 물론, 지역 수산물 가치도 급락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선사는 “우려하는 추가 오염 사태는 없을 것”이라 자신하며 대규모 수리 공사에 따른 경기 부양을 내세워 반대 여론을 잠재웠다.

실제 스톨트호 수리 범위는 화물창과 선실 구역, 배관, 철의장, 전장 등 선체 전반으로, 신조에 맞먹는 대형공사였다.

총공사비는 폐기물 처리비 50억 원을 포함해 400억 원 상당. 예상 작업 기간 1년에, 하루 최소 노동자 100명이 필요했다.

‘스톨트 그로인란드’ 출항 저지를 위해 성동조선해양 2야드 안벽 점거에 나선 안황주민들. 김민진 기자 ‘스톨트 그로인란드’ 출항 저지를 위해 성동조선해양 2야드 안벽 점거에 나선 안황주민들. 김민진 기자

주력산업인 조선업 붕괴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던 안황 주민들은 “무조건적인 반대에 나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지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면 지역민과 지역 경기도 고려한 합리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찬반이 분분한 가운데 11가지 조건을 전제로 기항이 허가됐고, 스톨트호는 2020년 9월 성동조선에 도착했다.

이후 다른 충돌이나 사고 없이 폐기물 처리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작년 2월, 선사 측이 돌연 중국행을 타진 중인 것으로 확인돼 공분을 샀다.

당시 중국의 한 조선소가 한국 업체의 절반도 안 되는 수리 비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험 폐기물 처리 부담에도 고용·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입항을 받아들였던 지역사회는 “급한 불 껐다고 쓰레기만 버리고 떠나려 한다”고 반발했다.

해수부도 기항 허가 때 내건 조건을 근거로 출항을 불허했다.

앞서 해수부는 ‘출항 전 선박의 안전 및 해양환경 보호를 위해 항해 장비, 선박 엔진, 해양오염 설비 등을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고 명시했었다.

설왕설래하는 사이 폐기물 이송·처리는 예정대로 끝났다.

폐기물 처리 후 선사의 수리 포기로 방치된 대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 스김민진 기자 폐기물 처리 후 선사의 수리 포기로 방치된 대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 스김민진 기자

하지만 선사가 수리 계약을 미루는 통에 스톨트호는 작년 7월 이후 최근까지 사실상 방치됐다.

이렇게 애물단지가 돼버린 선박을 최근 부산의 한 선박수리·해체 업체가 매입했다.

업체는 스톨트호를 부산으로 예인한 뒤 영도구 내 수리조선소에서 해체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고철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안황지역 주민들은 발끈했다.

우선 급한 대로 바지선을 끌고 와 뱃길을 막았고, 이날 주민 30여 명을 동원해 점거 농성에 나섰다.

성난 주민들은 “수리 공사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 못 떠난다”며 출항 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선박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점거한 주민들은 업체 측 작업자 투입을 막았다.

업체 측은 “명백한 영업방해 이자, 심각한 재산권 침해”라고 맞섰다.

업체 관계자는 “현재 이 배의 주인은 우리다. 이미 관계기관에 입·출항 허가를 다 받았다. 무턱대고 막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동조선해양에 지불하는) 하루 접안비용만 700만 원이다. 예인선까지 도착한 상황에 막으면 손해가 막심하다”며 “계속 이러면 재산권 압류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성난 주민들이 선체로 오르는 사다리를 점검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성난 주민들이 선체로 오르는 사다리를 점검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계속된 실랑이에 언성이 높아지고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되자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뒤엉켜 있던 양측을 분리한 뒤 중재를 시도했지만 여의찮았다.

주민들은 경찰의 경찰력 동원 경고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안황지역번영회 장진근 회장은 “이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이대로는 절대 못 보낸다. 마지막 순간까지 막겠다”고 말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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