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그래?” 웃음 포인트 달라도 ‘1인 가구’ 현실엔 전 세계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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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 시네토크 현장

“전 세계 영화제를 다녀보니, 문화가 달라도 영화를 본 소감은 우리 관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도 이래?’라고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피식’ 웃는 정도의 부분에서 ‘빵’ 하고 터지기도 해서 해외 관객들은 웃음 포인트가 조금 다르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이 부산을 찾았다. 지난달 28일 열린 ‘부산아시아영화학교(AFiS)와 함께하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시네토크’ 행사에 강사로 초청돼 부산 지역 영화인,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홍 감독은 KAFA 34기 출신이기도 하다.

혼자잘살기연구소 이중식과 대담
카이로영화제 등 해외서도 수상
문화 달라도 소감은 전 세계 비슷
늘 화 난 듯한 설정, 현실과 닮아

그가 연출한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2021) 한국경쟁 부문 배우상과 CGV 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 등 2관왕을 차지했다. 제43회 카이로국제영화제 신인 감독상, 제17회 오사카 아시안 영화제 대상 등 해외에서도 수상 소식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 시네토크 행사에는 ‘혼자잘살기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이중식 서울대 교수가 패널로 참석해 홍 감독과 함께 1인 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교수는 “지난해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극장에 가서 봤는데, 상황이나 연기에서 많은 공감을 했다”며 “영화 속 주인공이 화가 나 있는 듯한 모습, 사람에 대한 경계 늦추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 등이 현장에서 만나 1인 가구주의 모습과 닮아있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진아가 콜센터 직원이라는 설정도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직업의 구조가 가족의 구조를 많이 바꾼다”며 “긱 이코노미, 즉 쉽게 구하고 가볍게 그만둘 수 있는 직업이 많아지는 게 실제 1인 가구 촉발의 중요한 변수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은 “교수님 말씀처럼 나도 실제로 화가 많이 있었다”며 “사람들 속에 있는 게 편하거나 안정감이 든다기보다는, 불편한데 강요당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가정적이어서 뭉치는 것을 좋아하고 거실에 불러내시는 일이 많았는데, 집에서는 숨도 못 쉬는 기분이었다”며 “그런데 막상 혼자 살아보니 외로워서 친구한테 연락해서 술 먹자고 조르게 되는 등 양가 감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홍 감독은 “이런 게 나만 유독 예민하고 모난 건가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걸 영화로 만들어 보면 제 속풀이도 되고,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영화를 찍게 됐다”고 설명했다.

복도식 아파트에 혼자 사는 진아는 방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는다. 모든 가구는 방안에 있고, 거실은 텅 비워둔 채 사용하지 않는 설정이 특이하다. 홍 감독은 “스태프들도 ‘서울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원룸이나 오피스텔 같은 곳에 산다’며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서 방 한 칸에 모든 걸 밀어 넣고 사용하는 설정이 과하다고 지적했다”며 “그런데 내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전세 대출 받았나 보지?’ 하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거실은 내밀한 공간이 아니고, 바깥으로 향하는 공간이라 생각했다”며 “진아는 이게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주인공 진아가 왜 늘 TV를 켜놓느냐고 묻는 질문에 홍 감독은 “부끄럽지만 많은 부분이 나한테서 나왔다”며 “처음에는 몰랐는데 인식도 못하는 사이에 내가 집에 오면 꼭 TV를 켜놓고 있었고, 스마트폰이라도 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제가 입주해 있는 서울 신림동의 셰어 하우스에 입주한 1인 가구들에게 ‘기껏 독립했는데 남이 필요한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을 해봤는데 흥미로운 답이 나왔다”며 “바로 주변의 인기척이 아쉽다는 것이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집에 있으면 엄마가 아침에 달그락 거리며 음식 만드는 소리, 동생 출근하는 소리 등이 있는데 혼자 살면 사회적 진공 상태가 된다”며 “사람은 하루를 살아가는 리듬이나 박자가 필요한데, 주변의 리듬으로부터 단절되면 저녁 뉴스나 예능을 보면서라도 ‘지금이 몇 시구나’ 하고 채워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왜 돌아가신 어머니의 휴대폰을 아무렇지 않게 계속 쓰는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홍 감독은 “영화 속 아버지는 이런 데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캐릭터로, 병이 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후 그 병수발을 하다 어머니가 죽은 설정을 하게 됐다”고 답했다.

홍 감독은 “진아가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배척하고 담을 쌓고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는 그 때 왜 그랬는가’를 풀어가는 과정이었다”며 “관계로부터 상처 받을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별 가능성까지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아의 첫 트라우마는 (바람 나서 집 나간) 아버지와의 폭력적인 이별이었다는 암시가 있었고, ‘이별에 대해 쿨 해져야 내가 살겠구나’ 하는 것이 진아의 태도다”며 “그래서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도 애도하지 않는 사람의 삶을 상정했지만, 누가 떠나도 상처 받지 않고 아무에게도 영향 받지 않을 사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오해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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