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들러리 입찰 대형 건설사, 설계보상비 배상하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008년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 공사에서 입찰 담합을 벌인 뒤 고의로 탈락해 설계보상비를 지급받은 대형 건설사들이 부산교통공사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박정화)는 부산교통공사가 대우건설·금호산업·SK에코플랜트(전 SK건설) 등을 상대로 낸 설계보상비 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대우건설·금호산업·SK건설
2008년 지하철 다대선 1·2·4공구
고의 탈락 후 4억~5억씩 챙겨
부산교통공사에 반환 판결

재판부에 따르면 부산교통공사는 2008년 조달청을 통해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다대선) 1·2·4공구의 설계·시공 일괄 입찰 공고를 했다.

건설사들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컨소시엄(공동수급체)을 구성해 공구별로 지원했고,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한진중공업 컨소시엄, 코오롱글로벌 컨소시엄이 공구 하나씩을 낙찰받아 공구당 800억∼1000억 원대의 계약을 체결했다.

입찰 공고에는 ‘탈락자에게 설계비의 일부를 보상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므로 부산교통공사는 2009년 탈락 컨소시엄들의 대표사인 대우건설과 금호산업, SK건설에 설계보상비 약 4억∼5억 원씩을 지급했다.

그런데 4년여가 지난 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입찰 과정에 부당 공동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적발하고, 담합한 대표사 6곳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122억여 원을 부과한다. 투찰 가격을 합의해 기업들끼리 낙찰자를 미리 정한 뒤 ‘들러리’ 컨소시엄들은 형식적으로 입찰해 설계보상비를 챙겼다는 것이다. 낙찰 예정사가 들러리사에 설계 기초 자료 등을 제공하면 들러리사는 일명 ‘들러리 설계’ 혹은 ‘B설계’로 불리는 낮은 품질의 설계서를 내는 식이다.

이에 부산교통공사는 탈락 기업인 대우·금호·SK와 이들의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을 상대로 설계보상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담합과 설계보상비 지급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들러리 업체들이 부산교통공사로부터 받은 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부산교통공사가 설계보상비를 돌려받을 수 없다며 패소 판결했다.

입찰 공고를 한 주체는 조달청이기 때문에 입찰의 주체는 조달청이 소속돼있는 대한민국이라고 봐야 하며, 부산교통공사가 준 보상비는 법령이나 계약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신해 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 따라 재판부는 국가라면 몰라도 일단 부산교통공사가 보상비 반환을 청구할 수 있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런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조달청은 수요기관(부산교통공사)으로부터 계약을 요청받으면 국가가 당사자가 되고 수요기관은 수익자가 되는 계약을 체결하는데, 조달청과 수요기관의 약정에 따라 수요기관이 입찰 탈락자에게 설계보상비를 지급하게 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수요기관은 공사 계약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조달청과는 독립된 지위에서 설계보상비를 준 주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기관 역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재판부는 “부산교통공사는 피고들(들러리 기업들)의 담합행위를 알았더라면 설계보상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피고들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부산교통공사에 설계보상비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준영 기자 jyoung@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