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족함이 열정을 부른다
이승미 부산컨테이너터미널 영업본부장
2년 6개월 만이다. 필자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몇 차례 외국을 다녀온 이후 처음으로 해외 출장 중이다. 30개월 가까이 코로나19에 시달리면서 수없이 꿈꾸었던 해외 비행은 낭만적이었다. 며칠 전 여객기가 공항에서 비상할 때 기내에서 느낀 그 짜릿함, 비행 중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해가 그랬다. 부산항 마케팅을 위한 출장길이 즐거운 이유다.
항공산업이 발달한 지금과 달리 바다 끝에 절벽이 있다고 믿었던 14세기의 선박 항해는 어떠했을까?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항구에는 바다로 향하는 엔리케 왕자와 세계사에 대항해 시대를 연 이 나라 선원들의 모습을 담은 초대형 발견기념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1394년에 태어난 엔리케 왕자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아프리카 서부 뱃길 개척에 매진해 포르투갈을 최초의 해양 대국으로 이끈 인물이다. 그는 길이 20m, 너비 7~8m의 포르투갈식 범선인 ‘캐라벨’을 만들고 탐험대를 조직해 서아프리카 해안으로 보냈다. 1460년 그가 66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 탐험대는 적도에서 가까운 라이베리아 팔마스곶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이라면 페리와 차량으로 3~4일 정도면 다다를 수 있는 6167km의 거리를 가는 데 4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14세기 빈국 포르투갈 뱃길 개척 나서
위험한 바다에 도전해 해양 대국 건설
부산항, 자동화로 항만 경쟁력 제고 중
매사에 부족한 것 채우려는 노력 필요
초기 항해사들은 매듭진 줄 끝의 작은 나뭇조각과 북극성의 위치로 육지와의 거리와 방향을 재면서 낯선 바다를 항해했다. 선원들은 항해 도중 이가 빠지고 입술이 허물어지는 알 수 없는 질병에도 시달렸다. 그런데도 이들이 목숨을 건 항해를 계속한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현실의 부족함이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용기와 열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베리아반도 서쪽 끝에서 나아갈 곳이라고는 망망대해뿐인 작은 나라 포르투갈의 부족함은 바다에 대한 도전과 항해의 열정을 낳았다. 이렇게 시작된 항해로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오늘날 세상에 이른 것이다.
비슷한 이유가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영국의 가든(Garden) 문화를 탄생시켰다. 영국은 험난한 날씨 탓에 꽃과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는 환경과 토양을 가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국인들은 인공 정원 조성에 노력했으며, 세계에 가든 문화를 전파할 수 있었다.
부산항은 한때 연간 물동량 처리 규모 세계 3~5위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 대형 항만들의 급속한 투자와 성장에 밀려 최근 연간 2100만TEU가량의 물동량을 처리하는 세계 7위 항만으로 떨어졌다. 올해 부산항은 연간 2300만TEU 처리를 목표로 한다.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증가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부산항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환적 물량의 추가 유치가 필수적이다.
현재 필자가 출장 중인 곳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항은 세계 1위의 환적 항만으로 주요 글로벌 선사들의 지역본부가 몰려 있다. 세계 2위의 환적항인 부산항이 싱가포르항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한계가 많다. 전체 항만이 단일 부두운영사인 싱가포르항만공사(PSA)에 의해 운영되는 싱가포르항과 다르게 부산항은 모두 9개의 각각 다른 부두운영사가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구조여서다. 이 때문에 부산항은 부두운영사 간 경쟁으로 하역비도 경쟁 항만들에 비해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부산항은 싱가포르항과 비교할 때 항만 인프라나 글로벌 지수에 있어 부족함이 큰 게 사실이다. 중국의 대형 항만들과 비교해서도 규모 면에서 부족함이 있다.
이 같은 부산항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것이 최근 신항에서 문을 연 자동화 터미널이다. 신항 자동화 컨테이너부두에 대한 세계 선사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부산항이 14세기 포르투갈처럼 현재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열정이 항만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항은 새로운 한국형 자동화 터미널 도입을 통해 물류 생산성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으며 국제 물류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세계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같이 새로운 환경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부산항의 움직임은 필자의 해외 마케팅에도 큰 도움이 된다.
만일 건강이나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있다면, 우울해하거나 자조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열정적으로 새로운 세상과 젊은 세대에 대해 알아가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해 멋진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될 뿐이다. 열정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몸도 건강해지지 싶다. 혹시나 “뭘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경우 40년에 걸쳐 ‘세상의 끝’이라고 사람들이 두려워 한 암흑의 바다를 모험하며 뱃길을 개척하고 번영의 시대를 연 포르투갈 엔리케 왕자를 탐구해 볼 것을 제안한다. 많은 교훈을 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