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공습… 환란도 아닌데 환율 1300원 위협, 왜?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 1300원을 위협하면서 환율 레벨의 평가 기준선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전통적으로 환율 1300원은 금융위기나 경제위기 등 위기의 한복판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평가 잣대가 성립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종가 기준으로 1272.5원까지 올랐다. 29일 1250원대 중반까지 내려서기는 했지만 28일 종가는 2020년 3월 19일(1285.7원·종가 기준)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의미한다. 한때 금융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1300원을 돌파하는 것 아니냔 위기감이 팽배했다.
지난달 28일 종가 1272.5원
2년 전 코로나 쇼크 후 최고치
펀더멘털보다 대외 변수 탓
원화 가치 상대적 견조한 편
“환율레벨 평가 잣대 변경 필요”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원·달러 환율은 1300원은 그리 간단한 수치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단 한 번도 1300원대에 들어선 적이 없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이었던 2009년 3월 6일 장중 한때 원·달러 환율은 1597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점차 하향 안정세를 찾았다.
원·달러 환율이 1250원대를 넘어 1300원대에 육박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코로나19 사태 초기밖에 없다. 2020년 3월 금융시장은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전염병의 습격을 받아 패닉 그 자체였다. 현시점에서 그 당시 수준만큼 원화 가치가 절하돼야 하느냐는 의문이 남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속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중국의 코로나 봉쇄조치에 따른 경기둔화 가능성이 맞물리며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디폴트 선언 가능성까지 흘러나오면서 변동성을 키우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 근접하는 현 국면을 한국이 절대적인 위기를 맞은 상황으로 해석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시하는 시각이 많다.
최근 원·달러 환율 고점인 4월 28일 기준으로 보면 주요 6개국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작년 말 대비 8.1% 강세였다. 같은 기간 원화 가치는 6.6% 절하됐다. 달러화 강세만큼 절하되지 않았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같은 기간 11.6% 절하됐다. 달러당 엔화 환율은 130엔선을 넘어 2002년 4월 이후 가장 심각한 엔저를 기록했다. 유로화도 절하율이 7.6%에 달한다.
주요 통화와 비교해볼 때 원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방어를 잘한 편에 속한다는 의미가 된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한국의 펀더멘털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나 중국의 봉쇄 등 대외변수에 따른 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 현상의 연장선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수출업계의 상황도 원·달러 환율 상승을 예견해 대비하고 있는 만큼 당장 불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분위기다. 부산 A철강업체의 경우 환율 상승에 맞춰 물품 단가를 인상해 수출하고 있다. B물류유통업체 역시 환율 상승을 대비해 수개월 전부터 달러 기준으로 모든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부산 수출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환율 쇼크라고 할 만큼의 피해를 호소하는 기업은 드물다”며 “다만 이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또다른 대책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라고 밝혔다.
이주환 선임기자 jhwa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