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실론’의 눈물
‘실론티’라고 하면 롯데칠성음료에서 나오는 홍차 계열 음료가 먼저 떠오른다.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 지명으로 원래 실론티는 스리랑카에서 재배하는 홍차를 의미한다. 인도 아래에 위치한 섬나라 스리랑카는 우리한테 다소 낯설지만, 현지인들에게 한국은 낯설지 않은 나라라고 한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의 산업 전선에서 머무는 스리랑카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도에 방영한 ‘블랑카의 뭡니까 이게’는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을 다뤘다.
스리랑카가 지난달 12일 일시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했다. 스리랑카의 비극적인 역사는 우리에게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 스리랑카는 한국이 정부를 수립하던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오래도록 치열한 내전을 겪었다. 싱할라족과 타밀족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사이의 내전은 198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26년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10만 명이 목숨을 잃고 2만 명 이상이 실종되었다. 2017년 세계보건통계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자살률은 10만 명 당 35.3명으로 세계 1위다.
위기의 스리랑카 정부는 해외 동포들을 상대로 ‘외화 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우리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벌였던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해외 주재 스리랑카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외화를 송금해도 스리랑카 정부에 의해 제대로 쓰일 것이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정부의 면면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현재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국민들의 하야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형이 대통령을 하는 정부에서 10년 동안 국방부 장관을 맡아 학살 전쟁을 총지휘한 인물이었다. 현재 총리는 대통령의 형이며 이번에 사퇴한 장관 중 3명도 라자팍사 가문 출신이다. 한 집안이 다 해 먹는 정부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스리랑카는 중국이 놓은 ‘부채의 덫’에 빠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명목으로 처음엔 저금리 대출로 시작해 나중에 고금리를 요구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자원이나 각종 인프라의 운영권을 받는 조항을 담아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많았다.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이 2017년부터 99년간 중국항만공사에 이렇게 넘어갔다. 고립된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 심화가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