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에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추진… “일방적 핵폐기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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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 부산일보DB

정부가 고리원전와 한빛원전 등 국내 경수로 원자력발전소(원전)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한다.

2031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원전별로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기가 단계적으로 다가오지만,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문제는 아직까지 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한 상태다. ‘중간저장시설 확보’는 고육책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

2031년 경수로 순차적 포화 도래
영구처분시설 부지조차 선정 못 해
부울경 지역민 우려와 불안 커져
“생명 위협 반영구 보존 용납 못 해”

이에 부산 등 부울경 지역 시민단체와 환경·탈핵단체는 크게 반발했다. ‘중간저장시설’인 경수로 건식저장시설이 ‘반영구처분시설’로 둔갑할 경우 원전 밀집지역인 부울경 지역민이 장기간 ‘핵폐기물’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

3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고리원전과 한빛원정 등 경수로 원전에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정하고,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원전 24기(가동원전은 18기) 가운데 중수로인 월성원전 4기(영구정지된 월성1호기 포함)를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가 경수로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냉각 방식에 따라 물로 냉각하는 ‘습식’과 기체나 공기를 활용한 ‘건식’으로 나뉘는 데, 현재 경수로 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습식으로 저장돼 있다. 습식과 건식 모두 안전성 확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습식 저장시설은 차폐재로 물을, 습식 저장시설은 콘크리트·금속을 사용하는 점이 다르다.

수조 형태인 습식저장시설은 원전을 건설할 때부터 같이 들어서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이 모두 없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가 포화 상태가 되면 더는 원전을 가동하지 못하게 된다.

정부는 올 3월 중수로인 월성원전에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건립해 한숨을 돌린 것을 계기로, 이번에는 포화가 임박한 경수로에 건식저장시설 추진에 나선 것이다. 고리원전과 한빛원전은 국내 경수로 중에서도 가장 빠른 2031년과 2032년에 각각 사용후핵연료가 포화 상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차기 정부가 원전 확대 정책에 따라 원전 이용률을 높이면 포화 시기는 더 앞당겨질 수 있다. 따라서 고리원전과 한빛원전에 가장 먼저 건식저장시설 건립이 추진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원전에 건식 저장시설을 지으려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통상 이러한 저장시설의 인허가부터 설계, 시공, 완공 등 전 과정에 약 7년이 걸린다. 당장 시작해도 절차상 2029년에나 완공이 가능한 셈이다.

행정적인 절차 보다 우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주민 동의’ 절차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저장시설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며 “궁극적으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독립적인 행정위원회 설립과 부지 선정 등을 명시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를 두고 원전 최대 밀집지역으로 꼽히는 부울경 지역민의 우려와 불안은 크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오랜동안 원전을 떠안고 살았던 지역에 생명을 위협하는 방사성폐기물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처사”라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내에 250만 명이 살고 있는데, 방사성 폐기물 관리 위험까지 떠안으라는건 지역을 무시하는 것이다. 부산시 차원에서 시민을 위해 건식저장시설 건립을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력 실무 전문가 단체인 원자력안전과미래 이정윤 대표는 “원전 관련 사고가 발생하면 그 막대한 피해는 시민사회가 질 수밖에 없다. 여론 수렴 없이 핵폐기장화를 추진하는 것은 안된다. 정부는 지역민과 시민사회를 우선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 기관이 건식저장시설 건립 내용을 지역에 알리고 설명하는 등 신뢰를 쌓고 모든 지역민이 관심을 가지는 등 민관이 공조해야 한다”며 “지역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예민한 문제인 만큼 정부 기관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합의해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 높였다.

송현수·곽진석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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