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변경했다고 최초 계약금 68%까지 웃돈 ‘수상한 계약’
한수원, 신한울 1·2호기 경쟁입찰
신고리원전 5·6호기의 전력보조기기 경쟁입찰 구매 중 낙찰가율(예정가격 대비 계약금액 비율) 100%를 기록한 계약이 확인(부산일보 3월 30일 자 1·6면 등 보도)된 데 이어, 경북 울진군의 신한울원전 1·2호기에서는 최초 계약금액에서 최대 70%가까이 더 얹어준 계약 사례도 확인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설계변경으로 계약금액이 증액됐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부실한 원전 설계로 세금을 낭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일보>는 최근 한수원의 전자상거래시스템(K-Pro)에서 최근 11년여(2010년 8월~2022년 2월) 동안의 신한울 1·2호기 경쟁입찰 계약 288건 예정가격과 계약금액 등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7건은 계약금액이 예정가격을 넘어서서 낙찰가율 100%를 초과하는 것처럼 표시됐다. 해당 계약 중 1건은 숫자 입력 오류로 확인됐고, 최종 낙찰가율 100% 초과로 보이는 계약은 모두 6건이었다.
낙찰가율 100% 초과 계약 6건
계약 금액만 1600억 원 ‘훌쩍’
한수원 “설계 변경으로 증액” 해명
변경 계약금 치솟은 건 ‘큰 오류’
업계 “새로 입찰하는 게 공정”
6건의 계약은 △362kV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직류전동기제어반 △이동형 디젤구동펌프 △800kV 가스절연개폐장치·모선(GIS·GIB) △금속신축이음관 및 호스 △공기조화설비 제어반 등 구매와 관련된 것이다. 계약금액을 보면 800kV GIS·GIB가 1300억 원대로 신한울 1·2호기 국내 경쟁입찰 구매 중 가장 덩치가 크다. 이어 362kV GIS가 140억 원대, 직류전동기제어반이 50억 원대에 이르는 등 이들 구매 건의 계약금액만 1600억 원을 넘어선다.
경쟁입찰에서 공공기관은 예정가격을 넘어서는 계약금액을 공급사에 지불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해당 설비들은 최초 계약후 설계변경 때문에 계약을 바꿔서 금액도 증액된 것이라고 밝혔다. K-Pro에는 최종 계약금액을 입력하다 보니 예정가격을 초과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과 사업 분할로 계약 업체 이름이 바뀌어 새 계약정보를 입력해야 했는데, 예정가격은 그대로지만 최종 계약금액을 넣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자재 추가와 규격변경,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요구사항을 반영해 설계를 변경했고, 최종 계약금액도 올라간 것이다”고 말했다.
한수원의 해명대로 계약을 바꿨다 하더라도, 제어반의 경우 최초 계약금액에서 무려 68%(5억 6200만 원↑)나 올려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362kV GIS는 원 계약금액의 57.1%(52억 1500만 원↑), 이동형 디젤구동펌프는 53.7%(6억 6700만 원↑), 직류전동기제어반은 52.38%(20억 500만 원↑)나 계약금액이 늘었다. 이 정도 규모로 계약금액을 올려줄 상황이라면 다시 입찰을 부치는 게 합당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초 입찰과 완전히 다른 조건, 다시 말하면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입찰도 새로 하는 게 공정하다는 이유다. 한수원 출신인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박종운 교수는 “설계변경을 하더라도 재입찰을 해야지 기존 업체에다 변경계약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전 기술자 출신인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도 “설계 변경 후 계약금이 50%까지 치솟는 사례는 굉장히 드물다”며 “일부 설비의 경우 소수의 업체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데, 계약금액을 수십 % 올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한수원이 기존 공급사와 계약을 유지한 걸로 봐서는 입찰 참가 업체들의 담합을 의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효성중공업에서 15년 동안 한수원 등 발전소를 상대로 영업활동을 한 김민규 전 차장은 “불가피하게 설계를 바꿔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계약금액을 올려도 예정가격 이내에서 최초 계약금액의 5~10% 올리는 수준이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장기 프로젝트의 특성상 기술규격 변경 등 발주사 사정에 따라 설계 및 기술 기준이 바뀌면 계약사와 협의를 통해 계약 변경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밝혔다.
일부 설비의 설계변경을 두고 한수원의 전력보조기기 발주 시방서를 비롯해 계약 과정이 매우 허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362㎸ GIS의 전력차단용량 증대(50kA→63kA) 사례다. GIS의 전력차단용량을 50kA로 설계해 입찰에 부치고, 계약 뒤 용량을 63kA로 올리기 위해 계약금액을 57%나 올려준 것 자체가 엄청난 오류였다는 것이다.
김 전 차장은 허술한 설계가 원전 안전과도 직결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전력보조기기 발주 전 설계용역의 적정성을 따져보지 않는다면 후쿠시마 사태와는 차원이 다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후쿠시마 사고는 천재지변이 주 원인이지만, 부실 설계라는 인재에 의한 대형 사고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은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후쿠시마 후속조치 반영 요구 탓에 디젤구동펌프의 설계가 바뀐 점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는 “디젤구동펌프 최초 계약 시기가 2017년 4월인데, 후쿠시마 후속조치가 발표된 것은 2011년 5월이다”면서 “6년이 흘렀으면 처음부터 후쿠시마 후속조치까지 반영해 발주하는 것이 정상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한수원 측은 “원전 건설은 준비단계부터 준공까지 약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사업이다”면서 “이에 따라 기술기준, 규제요건의 변경과 설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황석하·곽진석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