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착하고 좋게 쓰시라… 부처님 깨달음 요체는 선용기심”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
오는 8일 부처님오신날에 앞서 어둠을 밝히는 연등이 세상 곳곳에 걸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鏡禪)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 색색의 연등에 달린 기원 명패들이 바람에 날려 부딪히면서 연등에서 텅~ 텅~ 법고 치는 듯 소리가 울린다.
그 묘한 울림을 귓전에 쟁이며 경선 스님에게 일구(一句)를 청했다. 마음과 용심(用心)을 말했다. 스님은 “용심을 잘해라, 마음을 잘 쓰라”며 “팔만대장경을 한 마디로 녹이면 선용기심(善用其心), 자신의 마음을 착하고 좋게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결국 모든 삶과 종교의 궁극이라고 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고행을 통해 이른 큰 깨달음의 요체는 결국 마음을 잘 쓰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아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부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있으나 행하기 어려운 거라 했다. 거기에 건너서야 할 문지방이 있다. 무명(無明)의 어둠을 밝히는 연등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기본 충실해야 큰 일 할 수 있어
소임 중 예불·공양·청소 강조
마음 본분 지키면 삶 달라질 것
범어사 주지실 벽면 액자의 글귀도 ‘마음’을 밝히고 있었다. “‘무언도심장(無言道心長)’은 말없이 도심을 길러라, ‘심지만연경(心持萬緣輕)’은 마음을 지키면 모든 인연 경계들이 가볍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스님이 이들 액자의 글을 직접 썼다. 범어사 초대 성보박물관장도 맡았었다. 스님은 ‘문화’에 일가견이 있다. 청남 오제봉에게 서예를 10년, 월전 이상범의 제자 오진 이응선에게 그림을 10년 배웠다. 경선 스님은 “글과 그림도 수행”이라며 “경전의 말씀을 쓸 때 자기를 관조하게 되고, 그림이라는 것도 완성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따르게 된다. 그것이 수행이다”라고 했다.
수행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주지 소임을 7년째 맡고 있는 스님은 예불 공양 청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면 대중들 사이에 불화가 없다는 것은 동산 스님 이래로 범어사 가풍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불 공양 청소를 같이 한다는 것은 항상 이 도량 내에 같이 산다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큰일을 할 수 있고, 기본이 서로의 마음을 꿴다. 여기에 일과 삶, 수행이 전부 녹아 있다. 세 가지는 결국 한 가지다.”
경선 스님은 “일하는 것을 좋아해서 천성이 부지런하다는 얘기를 듣는 편”이라며 “서울까지 서서 갈래, 앉아서 갈래, 라고 물으면 서서 가는 편이고 내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돌아서 걸어가는 편”이라고 했다. “주지를 맡고 그간 숫제 ‘현장 소장’으로 살았다. 일 많이 했다.” 그런데 지난해 교육관 공사 중에 일하는 것이 시원찮아 보여 직접 망치질에 나섰다가 쇠봉 때리던 큰 소리에 그만 고막을 다쳐 여전히 치료 중이다.
스님은 “범어사와 어느덧 57년 인연”이라고 했다. 행자 시절 범어사에 오기 전, 파계사와 김용사에 있으면서 성철 스님을 시봉했다. 성철 스님은 매서웠다. 못해도 3000배, 잘해도 3000배였다. 그 깊은 의중을 알 수 없었고, 용심이 잘 될 수 없었다. 1965년 봄에 들었던 “성철 스님의 스승인 범어사 동산 스님이 원적에 드셨어”라는 말속의 ‘범어사 동산 스님’이라는 한 마디가 가을까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을 그는 야반도주해서 범어사로 향했다. 그리고는 ‘57년 인연’인 것이다.
뭇 스님들이 그렇듯 스님은 범어사에서만 살았던 건 아니다. 해인사 통도사 상원사 등 전국 곳곳을 다니며 안거 중에 위장을 다쳐가면서 공부하고 수행했다. 큰스님들도 많이 만났다. 11년간 양산 토곡산에서 토굴 수행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 1시간 반을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인근에 길이 70m짜리 와폭(臥瀑)이 있는 거기서 29살부터 40살까지 살았다. 혼자 밥 짓고 나무하면서 11년간 아침저녁 예불 시간은 반드시 지켰다. 선열(禪悅) 같은 ‘고독의 멋’ 속에서 평생 중노릇의 밑천을 마련할 정도로 찰지게 살았다.” 의 한 구절처럼 달빛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에 달빛을 새겼다. 토굴 이름을 월인(月印)이라 했다. 그 빛이 마음에 아직 새겨져 있다.
마음을 스치는 모든 ‘빛’은 인연과 공덕이 된다. 씨가 발아한다는 말이다. “주지를 맡아 세 가지 일을 했다. 성보박물관을 크게 신축해서 이전했고, 선문화교육관을 늠름하게 개관했고, 템플스테이를 어엿하게 시작했다. 이 세 가지는 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때 신기하다. 마음에 담아 둔 것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꼭 그렇지는 않다. 스님은 일을 할 때 물러서는 법 없이 무섭게 부딪혀 해결한다고들 한다. 지극한 마음이 있어야 이뤄지는 것이다. 스님은 그것을 ‘부처님 가피’라고 했다.
스님은 “본래 마음, 본분을 잘 지킨다면 우리 삶이 달라질 것”이라며 “용심을 잘하고 남 잘 되는 것을 축복하면 자기에게 (복이)돌아온다. 그것이 본심을 지키는 자세이며,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이다”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