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복잡할 땐 다(茶) 내려놓아 보세요
코로나로 집콕 늘고 건강 관심 커지면서 차 인기
노년층 취미 인식 벗고 차 즐기는 젊은 층 늘어
차 맛 올리는 다식, 눈맛 더하는 다구도 매력 요소
3년째 코로나가 일상을 묶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동안 ‘차’(茶)가 인기를 키웠다. MZ세대 젊은 층도 차 마시기에 푹 빠졌다. 차의 어떤 매력이 바쁜 현대인을 사로잡았을까?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날, 가만히 앉아 차 한 잔을 내려 봅니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마음이 찻잔에 담깁니다.” 책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맥파이앤타이거 지음)에서는 차의 시간이 필요한 날들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MZ세대의 소소한 취미로 인기 상승
“최근 차 수업을 듣는 연령층이 많이 낮아지고 다양해졌어요. 젊은 세대들은 차 체험을 하러 많이 옵니다.” 부산여자대학 한국다도협회 설소지부 김향옥 지부장은 차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노년층 취미로 인식되던 차가 코로나를 만나면서 반전을 이뤘다. 거리 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소소한 ‘집콕 재미’를 찾는 이들에게 차는 좋은 취미가 됐다. 또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더욱 관심을 얻었다.
셀럽의 영향도 컸다. 가수 이효리가 ‘효리네 민박’에서 “마시면 몸이 편해진다”며 보이차로 아침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자 보이차 열풍이 일었다. 가수 태연 등 아이돌들이 부기를 빼기 위해 매일 마신다는 ‘마법의 차(녹차 티백+꿀)’도 눈길을 끌었다.
차의 인기는 SNS 해시태그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게시물 수는 보이차 22만 2000개, 다도 10만 4000개, 전통차 5만 2000개, 차 마시기는 1만 6000개에 달한다. 이 외에 눈에 띄는 해시태그는 ‘다식’과 ‘다구’. 차와 함께 즐기는 다식 게시물은 2만 4000개, 차를 내리고 마실 때 쓰는 다구 게시물은 1만 7000개이다. 예쁜 다구에 먼저 반하고 이후에 차에 빠지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김 지부장은 “차의 카페인은 다른 성분과 결합해서 체내에 축적되지 않고 배출됩니다. 그래서 고3 학생들에게도 추천해요. 어린아이가 마신다면 농도를 묽게 하면 됩니다. 차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차의 효능으로는 항암 효과, 당뇨병 예방, 노화 방지, 피부 미용, 지방 분해 등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장 큰 효능은 역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아닐까.
■보고 맡고 마시고 느껴 본 차의 매력
차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 부산 서구 암남동 한국다도협회 설소지부를 찾았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테이블에 놓인 색색 화려한 다식이었다. 김 지부장이 직접 만든 것들이다. 라이스페이퍼를 꽃 모양으로 튀겨 치자 가루를 얹은 것, 곶감에 호두를 넣어 만 것, 파인애플을 갈아 한천을 넣어 굳힌 것, 방울토마토를 졸이고 말려 꽃차를 올린 것, 대추를 고아 굳힌 것 등 아기자기 예쁘다. “다식은 몸에도 이롭고 눈에도 이롭습니다. 차를 마실 때 속을 편하게 해 주는 역할도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먼저 마음을 열게 하기도 하지요.”
차는 찻잎의 발효(산화) 정도에 따라 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흑차로 구분한다. 널리 알려진 중국 보이차는 흑차이다. 김 지부장은 먼저 하동 햇차를 내렸다. 5월에 딴 풋풋한 햇차의 향을 먼저 즐기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녹차는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70~80도의 온도로 내리는 게 좋다고 한다. 우린 차를 찻잔에 따르고 색과 향을 감상한다. 한 모금 넘기니 봄의 싱그러움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다음은 보이차. 보이차는 발효차이므로 뜨거운 물로 우린다. 처음 우린 차는 먹지 않고 버린다. 이를 ‘세차’라 한다. 보이차는 오랜 세월 묵힌 후에 마시므로 차에 먼지 등 이물질이 있을 수 있어 찻잎을 씻어 준다고. 녹차가 싱그러운 맛이었다면 보이차는 부드럽고 향이 깊다.
녹차 잎을 갈아 만든 말차는 차를 만드는 과정이 화려하다. 차선으로 말차 가루와 물을 저어 거품을 내는 ‘격불’이 우아하다. 찻잔에 향긋한 향과 함께 꽃을 피우는 매화차,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녹차의 맛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이슬차도 색다르다. 여기에다 산지와 제조 방법, 숙성 시간 등에 따라 색과 향과 맛이 달라진다니 차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렵게 생각 말고 다양하게 마셔 보라
차를 한 번 마셔 볼까 생각이 들어도 다구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차 세계 진입을 막는다. 찻상, 다관, 찻잔, 차시, 숙우, 차판…. 게다가 차의 종류에 따라 다구의 모양과 재질도 달라진다. “차 종류별로 특성을 고려해 다구를 갖추면 좋겠지만 처음 차를 시작한다면 개완배 하나만 있으면 쉽게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김 지부장이 추천하는 개완배는 뚜껑이 있는 찻잔으로, 뚜껑으로 찻잎을 걸러 차를 마실 수 있다. “차는 마시는 게 가장 우선이고 도구는 그다음입니다. 차를 즐기다 보면 다구가 하나둘 눈에 들어오게 되고 하나씩 마련해 나가는 재미도 있지요.”
입문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차로는 접근이 쉬운 발효차를 들었다. “물 온도에 상관없이 뜨거운 물을 부어 우리면 되니 쉽습니다. 보이차는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초보가 접근하기 어렵지요. 한국의 황차를 먼저 마셔 보세요. 녹차와 보이차의 중간 정도 발효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네요.” 김 지부장은 한국차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우리나라도 차 정말 잘 만듭니다. 하동이나 보성의 다원에서 정성 듬뿍 들이고 깨끗하게 차를 만듭니다. 5월에는 꼭 햇차를 즐겨 보세요.”
날씨가 더 더워지면 홍차를 차갑게 즐겨도 좋다. 홍차를 우려 얼음을 넣고 레몬 조각 하나 띄우면 금상첨화다. 홍차에 여러 가지 과일과 꿀을 넣고 얼음을 띄우면 홍차 아이스 펀치가 된다. 여름에 만드는 연잎차는 열을 내려 주는 효과가 있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올드하다는 편견은 버려, 힙한 전통찻집
부산 해운대에 가면 꼭 가야 할 핫플 리스트에 뜻밖에도 전통찻집이 있다. 달맞이언덕에 위치한 ‘비비비당’이 바로 그곳. 2016년 문을 연 이곳은 나이·지역·국적 불문 인기 좋은 곳이다. 마치 한옥에 들어선 듯한 내부 인테리어에 먼저 감탄하고, 창 너머로 펼쳐지는 해운대와 청사포 풍경에 두 번 감탄한다. 눈맛과 입맛 다 사로잡는 메뉴는 세 번째 감탄 포인트. 연인 찻상(2인 3만원)을 주문하자 시그니처 메뉴인 단호박 빙수와 단호박 식혜, 목련꽃차와 다식이 코스로 차려졌다. 창가에 나란히 앉아 바다 뷰를 즐기며 차를 나누는 시간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일하면서 커피를 많이 마셨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차를 접하게 됐어요. 커피는 각성하기 위해 마셨는데 차는 릴렉스가 되더라고요. 막연하게 찻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이루게 됐습니다.” 원소윤 대표는 올드한 느낌의 찻집이 아니라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관광도시 부산을 찾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점도 안타까웠다고.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것인지 젊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찻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비비비당 입소문의 주역이 SNS를 하는 젊은 세대라는 게 뿌듯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