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닮은 집… 그 속엔 조화로운 세상이 담겼다
동아대 교수 출신 김명식 작가
부산서 8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미국·일본·경기도 용인 등 살며
다양한 환경·분위기 담은 집 묘사
김명식 작가에게 집은 ‘사람’이다. “머리, 눈, 코, 입이 있어요. 또 집에 색깔이 있어요. 하얗고 노랗고 까만 집은 다양한 피부색을 표현한 거예요. 그럼 빨간 집과 파란 집은 뭐냐고 물어보는데, 빨간 집은 정열적인 사람, 파란 집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죠.”
‘80회 기념 김명식전’이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미광화랑에서 개최되고 있다. ‘희망과 평화, 화합의 메시지’라는 부제를 가진 전시는 김 작가의 개인전으로는 부산에서 8년 만에 열리는 것이다. 중앙대를 졸업한 김 작가는 1993년부터 2015년까지 동아대 미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유년 시절의 풍경을 담는 ‘고데기’ 작업을 했는데 슬럼프가 왔어요. 입시 철이 끝나고 교수 연구실에서 컴퓨터로 검색하는데 휘트니뮤지엄에서 하는 전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 자리에서 비행기표를 끊었어요.” 대가들의 작품을 마주한 감동을 작업으로 표현하기 위해 2004년 미국 롱아일랜드대학에 연구교수를 하러 갔다.
“하루는 작업실 가는 전철 창밖으로 집들이 보이는데 그게 사람 얼굴로 보이더군요. 소호에서 본 다양한 인종의 모습이 집에 겹쳐 보였죠. 작업실에 가서 미친 듯이 집을 그렸습니다.” 화가 김명식 ‘이스트사이드(East Side)’ 시리즈의 시작점이다.
전시작 ‘이스트사이드-MS04’에는 10가지가 넘는 색으로 된 집들이 그려졌다. 이렇게 컬러풀한 작업과 더불어 비슷한 색조로 차분하게 그려진 집 그림도 있다. 김 작가는 “정적인 것은 2010년 일본 규슈산업대학에 연구교수를 갔을 때 시작된 작업”이라고 했다. “같은 동양인인데 행동 방식은 완전히 달랐어요. 대중교통을 타도 조용하고. 너무 조용하니 제 그림에서 색깔이 없어지더라고요.”
초록색 전원 풍경이 두드러진 ‘컨트리사이드(Countryside)’는 퇴직하고 경기도 용인으로 이주한 뒤에 나온 작업이다. “전원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주변이 온통 초록이에요. 환경에 따라 6~7년 단위로 그림이 바뀌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그림도 똑같구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컨트리사이드’ 시리즈에서 평면화된 원경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코로나 시대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 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걸 싫어했잖아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담긴 거죠. 평면화된 것과 원경이 섞인 것은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또 사람이 숨을 쉬듯 그림에도 여백을 줘서 잠시 쉬어갈 수 있게 했어요.”
김 작가는 집 그림마다 빨간색을 다 들어가 있다고 알려줬다. “빨간색, 녹색, 청색을 좋아하는데 특히 빨간색은 무채색처럼 보이는 작업 안에도 숨어있어요. 정열과 젊음, 재화 등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해서 즐겨 써요.” 이번 전시에는 유화 작업과 함께 수채화, 드로잉 작품도 선보인다. 중국 악기 류금에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채색을 한 작업까지 40여 점이 전시된다.
‘사람을 닮은 집’에는 김 작가가 꿈꾸는 조화로운 세상이 담겨있다. “화합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피부색은 달라도 싸우지 말고 똑같이. 그림 속 집 크기가 비슷한 이유도 거기 있어요.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추구합니다.” 전시는 20일까지 이어진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