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화장실서 옷 갈아입는 열악한 현실 알고도 해녀 하겠나?”
[부산숨비] ④끝이 보인다
“해녀들이 ‘물건(해산물)’ 건져올 날도 얼마 안 남았어!”
이달 3일 낮 12시께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어촌계 해녀 탈의실 앞. 남천마리나 귀퉁이 좁은 탈의실에서 나온 해녀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오토바이로 인근 시장까지 해산물을 옮겨주는 ‘삼춘(삼촌)’에게 잡은 물건을 맡긴 직후였다.
엄살이라 보긴 어려웠다. 이날 남천동 바다에 들어간 해녀는 3명. 올해 1월 〈부산일보〉가 만난 80대 한 해녀는 물질할 몸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서구 암남어촌계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송도 암남항 해녀 5명 중 1명은 기관지가 좋지 않아 물질이 어렵다고 했다.
육지 해녀의 대명사 부산 해녀는 소멸 위기다. 부산시 해녀 실태조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고 해녀 중 70대 이상은 659명 중 497명으로 74.2%다. 몸이 안 따라주거나 호흡이 가빠지는 나이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길게 봐도 10년이면 대다수 부산 해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부산 해녀와 그 문화가 점차 소멸하고 있다.
넷 중 셋 70세 넘어 명맥 끊길 듯
젊은 해녀 끌어들일 인프라 부족
탈의실조차 없는 어촌계만 8곳
제주도 비하면 턱없이 적은 지원
해녀 유입 쉽도록 문턱 낮추고
문화 자원화·실질적 지원 필요
■탈의실 없는 해녀촌
해녀 문화를 보전하려면 젊은 해녀 유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다. 우선 인프라가 열악하다. 11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30개 어촌계에서 해녀들이 활동 중이다. 이 가운데 복지회관과 탈의실 같은 편의시설이 없는 곳이 8곳에 이른다.
편의시설이 없는 다대포 해녀들은 오래된 배 뒤에 설치한 천막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미리 마련한 민물로 몸을 대충 씻으며 물질을 이어간다. 부산 기장군 신암어촌계 해녀들은 관광객이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다대어촌계 박정숙(73) 해녀는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제주도 해녀만 혜택을 받는 느낌”이라며 “우리는 배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탈의장이라도 하나 지원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신암어촌계 김정자(72) 해녀회장은 “우리가 해녀도 많고 열심히 물질도 하지만 변변한 탈의실 하나 없다”고 했다.
부산은 제주도보다 해녀에 대한 지원이 열악하다. 제주시는 지난해 해녀 질병 진료비 32억 9600만 원, 친환경 해녀탈의장 시설개선사업 1억 8000만 원, 신규 해녀 어촌계 가입비 1000만 원, 신규 해녀 초기 정착금 2100만 원, 해녀 문화 공연 운영비 지원 2400만 원, 성게 껍질 분할기 2000만 원 등 65억 1700만 원을 지원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테왁 보호망, 잠수복 지원 사업에 1억 200만 원을 사용했다. 부산이 ‘육지 해녀’ 중심지라 해도 지원 규모와 다양성은 제주도와 큰 차이를 보인다.
■여전히 높은 문턱
해녀는 잠수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공동체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해녀에 도전해도 끈끈한 공동체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잦았다.
하지만 최근 해녀 명맥 단절이 현실화하자 일부 어촌계에서 변화의 움직임도 일어났다. 어촌계 가입비 등을 낮추며 해녀 문화를 잇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남천어촌계 노봉금(76) 해녀는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으면 환영할 듯하다”며 “막내가 들어오면 ‘남천어촌계에 해녀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알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해녀들이 자유롭고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가 그렇진 않다. 하루 4~5시간 일을 한다고 해도 물질 준비부터 해산물 손질까지 마치면 많은 시간이 훌쩍 간다. 바다 지형 등을 이해하기까지 제대로 된 수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당장 생계를 책임지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부산시는 신규 해녀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2월 부산시의회는 ‘부산광역시 나잠어업 종사자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공포한 상태다. 어촌계 가입이 확정되거나 어촌계장에게 나잠어업(해녀) 능력을 인정받은 종사자에게 일정 기간 소득 보전과 어촌 정착 지원을 담은 내용이다. 부산시 수산정책과 관계자는 “결국 어촌계가 신규 해녀를 받아들여야 지원 규모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문화 자원으로
신규 유입이 어렵다면 관광 자원이나 문화적 자원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해녀는 ‘해양수도’를 자부하는 부산에 특별하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가치도 인정받았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드라마 ‘파친코’만 봐도 주인공 ‘선자’가 영도에서 물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2030 월드엑스포 유치에 나선 부산이 세계적으로 부산 해녀를 활용한다면 각광을 받을 것이다.
특히 해녀학교나 각종 체험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해녀 육성·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는 2016~2017년 ‘기장군 해녀문화 체험교육’을 진행했다. 매년 2회, 총 4회를 진행했다. 매주 토요일 8회 과정이었는데 경쟁률이 4 대 1을 넘었다고 한다. 유형숙 동의대 한일해녀연구소장은 “해녀 체험이 부산형 레저관광 상품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라고 말했다.
다만 유 소장은 해녀 문화 전승이 단순히 ‘물질’에만 집중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육체적 활동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이해하게 할 교육적, 문화적 자원이 있어야 해녀 문화가 제대로 계승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