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광안대교에 멍게가 가득했지”… 유쾌한 ‘부산 남천’ 해녀들 #4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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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5월 3일 오전 8시 10분께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항. 요트와 어선이 정박한 ‘남천마리나’ 끄트머리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해녀 탈의실’이라 표시된 곳에서 해녀 3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로 3m, 세로 5m가량인 작은 공간이었다.

그들은 바다로 갈 준비에 한창이었다. 고무 옷 안에 내의를 껴입은 강순희(75) 해녀는 “광안대교 밑으로 가도 물건(해산물)은 예전보다 없다”며 물질을 떠났다.

남천 해녀들이 이달 3일 남천항 ‘해녀 탈의실’ 앞에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남천 해녀들이 이달 3일 남천항 ‘해녀 탈의실’ 앞에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해녀는 부산 도심 속 남천동에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입소문 난 빵집이 많아 ‘빵천동’이라 불리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나온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라는 대사로 유명해진 그곳이다. 남천 해녀들은 유명 관광지가 되기 전부터 이 바다를 꾸준히 누비고 있었다.


셋 아니면 홀로

남천어촌계 해녀도 어느새 손에 꼽을 만큼 줄었다. 이날 노봉금(76), 강순희, 김경숙(74) 해녀 3명만이 바다로 향했다. 그들은 셋이 같이 나온 날도 오랜만이라 했다. 남천 해녀들은 올해 1월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분명 “이제 5명 남았다”고 말했다. 불과 넉 달 만에 물질하러 나온 해녀가 2명 줄어든 셈이다.

꾸준히 물질하려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강순희 해녀는 “보통 오전 7시 반쯤 탈의실에서 쉬다가 이바구(이야기)도 하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커피도 한잔하면서 여유롭게 준비해야 물질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남천 해녀가 이달 3일 남천항을 벗어나 광안대교 방향으로 물질하러 가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남천 해녀가 이달 3일 남천항을 벗어나 광안대교 방향으로 물질하러 가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남천 해녀들은 1명씩 따로 바다에 들어갔다. 탈의실 옆 바다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시차를 두고 내려갔다. 노봉금, 김경숙, 강순희 해녀 순으로 물질을 떠났다. 노봉금 해녀는 평소 가장 천천히 준비하는 강순희 해녀를 가리키며 “허리가 안 좋아서 빨리 준비를 못 한다”더니 “느림보야 느림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물질하는 장소도 제각각이었다. 해녀들은 남천항 주변부터 광안대교 아래까지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림보’라고 놀림당하던 강순희 해녀는 30분 늦게 바다로 나갔지만, 오히려 삼익비치타운 앞바다까지 나아가는 넓은 활동 반경을 자랑했다. 그는 물질을 떠나기 전 “물에 들어가면 덜 아프다”고 말하곤 했다.

사진 왼쪽 끄트머리에 작은 해녀 탈의실이 있는 남천항. 뒤쪽으로 삼익비치타운, 오른쪽으로 광안대교와 해운대 마린시티가 보인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사진 왼쪽 끄트머리에 작은 해녀 탈의실이 있는 남천항. 뒤쪽으로 삼익비치타운, 오른쪽으로 광안대교와 해운대 마린시티가 보인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지난달 28일에는 홀로 바다에 나간 해녀도 있었다. 김경숙 해녀가 남천항 방파제 일대를 돌며 물질했다. 보통 다른 어촌계에서는 여럿이 물질을 떠나곤 한다. 숫자가 적은 남천 해녀들은 누군가 없다고 해서 계속 물질을 쉴 수는 없다. 그들은 대신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오토바이 탄 ‘삼촌’

남천 해녀들은 3시간 넘게 바다에 머물다 차례대로 돌아왔다. 오전 11시께 뭍으로 돌아온 노봉금 해녀는 “오늘은 물이 흐리다”고 푸념했다. 그래도 망사리에는 물건이 가득했다. 탈의실로 돌아간 그는 군소를 냄비에 가득 담아 1시간 이상 삶았다.

남천어촌계 김경숙 해녀가 이달 3일 잡아 온 문어. 그는 미역, 해삼, 전복 등 다양한 해산물을 함께 건져왔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남천어촌계 김경숙 해녀가 이달 3일 잡아 온 문어. 그는 미역, 해삼, 전복 등 다양한 해산물을 함께 건져왔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뒤이어 김경숙 해녀도 성게, 해삼, 미역 등을 가득 건져왔다. 커다란 전복과 문어도 눈에 띄었다. 문어는 야행성이라 보통 낮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김경숙 해녀는 “옛날에는 남천동 일대에 없는 게 없었다”며 “물건이 많이 줄었듯 우리도 숫자가 줄어서 그럭저럭 잡을 만하다”고 했다.

수확한 해산물은 남천 해녀를 돕는 ‘삼촌’이 맡아 처리한다. 물 밖에서 무거운 망사리를 받아주거나 잡아 온 해산물을 종류별로 정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해녀들이 물질을 간 사이 탈의실과 연결된 LPG 가스통을 교체해주기도 했다.

남천 해녀가 잡아 온 해산물을 옮길 오토바이가 해녀 탈의실 앞에 세워져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남천 해녀가 잡아 온 해산물을 옮길 오토바이가 해녀 탈의실 앞에 세워져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삼촌은 타고 온 오토바이에 해산물을 실었다. 운전대를 잡고 남천해변시장과 인근 판매처로 향했다. 남천 해녀들은 오후에는 시장에서 장사도 한다. 노봉금 해녀는 “바닷가 앞에서 해산물을 팔던 시절엔 손님이 많았다”며 “해녀 있는 곳은 장사하는 동네가 많은데 우리는 그게 안 된다고 하더라”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멍게와 광안대교

남천동 앞바다를 가르는 광안대교는 건설 반대에 부딪힌 시절도 있었다. 환경 파괴 등이 이유였는데 바다가 터전인 해녀도 우려를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광안대교는 한동안 해녀에게 예상치 못한 ‘바다밭’ 역할을 했다. 바다 교각에 해산물이 잘 붙어 ‘광안대교 다리에는 큰 멍게가 가득하다’는 입소문이 날 정도였다.

남천 해녀가 이달 3일 광안대교 옆 방파제 주변을 오가며 물질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남천 해녀가 이달 3일 광안대교 옆 방파제 주변을 오가며 물질하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남천 해녀들은 교각에 해산물이 많이 붙던 시절이 있었던 게 맞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광안대교가 마냥 반가울 수는 없었다. 강순희 해녀는 “광안대교 교각에 씨알이 굵은 멍게가 가득한 시절이 있었다”면서도 “우리가 그렇듯 바다도 늙어서인지 예전만큼 찾아보긴 어렵다”고 했다. 2015~2017년 여름철 고수온 여파로 이제는 멍게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이어 “광안대교가 없던 시절에는 태풍이 지나가면 앞바다가 깨끗해졌다”며 “지금은 찌꺼기도 많이 떠 있고 바위에 뻘(펄)이 붙어 해조류도 잘 안 자란다”고 덧붙였다.

광안대교와 해안가 매립지 등에 들어선 건물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광안대교와 해안가 매립지 등에 들어선 건물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해녀들은 남천동 바다 매립과 주변 개발 여파도 몸소 느껴왔다. 대표적으로 부산시는 1979년부터 남천동 앞바다 34만 3854㎡를 매립했다. 1980년대 초중반에 부산도시가스(현 메가마트), 대연비치아파트, 남천뉴비치아파트가 연이어 들어섰다. 박귀한 남천어촌계장은 “바다를 매립하고 방파제를 축조하면서 예전만큼 좋은 물건이 많이 안 올라온다”며 “해산물이 붙을 돌이 많이 없어져서 그런 듯하다”고 말했다.


■ 흐릿해진 화려한 과거

남천동 앞바다는 해녀들에게 많은 물건을 안겨준 곳이었다. 2017년 수영문화원이 발간한 ‘부산 수영구 도시 어부의 삶과 일상’에는 2007년 8월 기준 해녀 구·군별 어획물 수확 현황이 담겼다. 그 이후로는 명확한 조사 기록이 없지만, 분명 예전 수확량은 비교할 수 있는 지표다.

김경숙 해녀가 이달 1일 홀로 물질을 갔다가 남천항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김경숙 해녀가 이달 1일 홀로 물질을 갔다가 남천항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당시 부산 구·군별 해녀 해산물 수확 실적은 영도구 298t, 수영구 240t, 해운대구 208t, 기장군 93t, 서구 56t 순이었다. 어촌계별로 보면 동삼어촌계 201t, 민락어촌계 110t, 남천어촌계 107t, 남항어촌계 97t 등이었다. 남천 해녀가 주변 횟집 등에 물건을 공급해온 ‘민락 해녀’와 나란히 수영구를 대표한 셈이다. 남천동 앞바다가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바다밭’이었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김경숙 해녀가 이달 1일 물질을 마친 뒤 남천항 해녀 탈의실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김경숙 해녀가 이달 1일 물질을 마친 뒤 남천항 해녀 탈의실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남천동에 영도 다음으로 출향 해녀가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물질을 쉬고 있는 남천어촌계 강인공(82) 해녀는 “제주에서 살다가 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넘어왔다”며 “당시에는 우뭇가사리가 많이 잡혀서 제주도에서 수백 명씩 넘어와서 물질했다”고 회상했다.

이제 남천동 앞바다에서 해녀를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봉금 해녀는 “내가 젊었을 때 남천동에 머문 해녀만 22명 정도였다”며 “남아있는 우리 5명은 당시 막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강순희 해녀는 “다음 세대가 있으면 좋지만 그게 쉬운 일이겠느냐”며 “우리 세대가 끝나면 이제 여기서는 없어질 것 같다”고 했다.


※ “그게 사랑싸움이지”

3일 오전 8시께 남천동 해녀 탈의실에 있던 노봉금 해녀는 <부산일보> 취재진이 다가오자 물을 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오지 말라는데 뭐 하러 왔냐”고 큰소리치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남천 해녀들은 취재진이 물질 현장을 찾겠다는 요청을 거절한 상태였다. 나이 든 사람들 물질하는 모습을 찍어서 뭐가 좋냐는 이유에서다. 올해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친분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완곡히 거절했다.

노봉금 해녀가 이달 3일 물질을 떠나기 전 <부산일보> 취재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노봉금 해녀가 이달 3일 물질을 떠나기 전 <부산일보> 취재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윤혁 PD jyh6973@busan.com

그래도 만나러 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바닷가에 찾아가니 금세 웃음으로 화답했다. 해녀들은 물질을 준비하고 마무리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특히 노봉금 해녀의 손주 사랑은 엄청났다. 막내 손자가 군대 신체검사를 받는 날이라더니 건축학도인 다른 대학생 손자를 자랑하기도 했다.

노봉금 해녀에게 “이렇게 잘해줄 걸 왜 오지 말라고 하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게 사랑싸움이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배고플 텐데 그만하고 돌아가라”며 “이제 밥 먹으러 가라”고 재촉했다.

그는 이날 “아이고 우리 손주”라며 다정한 손길로 취재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떠나는 취재진을 배웅하기 위해 계속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남천 해녀 이야기를 생생히 담은 영상은 기사 위쪽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인터뷰 기사로 남천 해녀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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