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가뭄과 모내기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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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은 태풍이나 홍수, 지진처럼 즉각적이기보다는 장시간에 걸쳐 발생하고, 시작과 끝이 부정확하다. 어느 나라에서도 장기간 비가 오지 않으면 민생이 파탄되고, 외세의 침략 및 국력 쇠퇴를 초래했다. 비변사등록과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경상도의 가뭄으로 낙동강의 물줄기가 끊겼다”(인조 19년, 1641), “가뭄은 참으로 참혹하다. 다가올 가을에 풍년을 바라보기는 매우 어렵게 되었다”(정조 6년, 1782) 등 가뭄이 심해 하천이 단절되고, 삶이 팍팍해졌다는 기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태조부터 순종(1392∼1910)까지 가뭄 3173건, 기아 118건, 흉년 5948건, 기근 1657건이 검색될 정도다. 수차 등 중국의 수리 시스템을 도입했던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발생하면 성리학적 사고에 따라 임금과 관리들은 각자 소임을 다했는지, 사치하지는 않았는지, 원한이 맺힌 사람들은 없는지 성찰하면서, 기우제를 지내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자 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했던 가뭄이 전 지구적으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단일 국가로서 세계 밀 생산량 2위인 인도는 최고 기온이 47도를 넘는 폭염이 강타해 밀 수확량이 급감하자 밀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에서는 밀 생산지인 캔자스주와 오클라호마주에서는 가을밀 파종을 시작하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고 한다. 소말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는 1년째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2200만 명이 기근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한국도 지난겨울(지난해 12월~2월) 강수량(13.3mm)은 1973년 이후 가장 적었다고 한다. 경남 지역 올해 누적 강수량은 204.1mm로 지난 30년간 평균 누적강수량(319.8mm)의 61.7%에 그쳤다. 특히 합천은 48.6%로 ‘약한 기상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비상 대책으로 전국에서 가뭄 현상이 심각하고 지하에 모래와 자갈층이 두껍게 발달한 지역을 탐색해 지하수댐(지하수 저류지) 구축 공사를 추진할 정도이다.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고추, 마늘, 양파, 무, 당근 등의 작황이 나빠지고, 병해충이 많아진다. 최근 들어 봄 무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이 전년 동기보다 88%나 올랐다고 한다. 5~6월 본격적인 모내기 철을 맞아서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농민들의 마음, 밥상 물가 인상으로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의 심정을 촉촉하게 해갈할 수 있는 비 소식을 학수고대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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