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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1968~)

숲이 된 나무들은 그림자를 쪼개는데 열중한다

새들은 부리가 낀 곳에서 제 소리를 냈다

다른 방향에서 자란 꽃들이 하나의 꽃병에 꽂힌다

늙은 엄마는 심장으로 기어 들어가고

의자는 허공을 단련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신맛과 단맛이 뒤엉킬 때까지

사과는 둥글어졌다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2017) 중에서


밀도가 충만하게 흐르는 시를 만나면 긴장하게 된다. 시인은 비디오테이프의 빠르게 감기나 되감기를 하다가 문득 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열중하게 하고 집중하게 하는 시인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시인은 ‘다른 방향에서 자란 꽃들이 하나의 꽃병에 꽂힌’ 닫힘의 순간과 ‘의자는 허공을 단련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는 열려있음의 순간을 동시에 배치하고 ‘같은 자리에서 신맛과 단맛이 뒤엉킬 때까지 사과는 둥글어졌다’라며, 한 알의 사과를 얻어낸다. 꽃 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 사과나무가 한 알의 사과를 둥글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밀도를 뻗어보았겠나. 아하. 시인을 만난 이 사과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정밀한 사과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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