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안 삽니다, 제로웨이스트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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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 커지면서 ‘제로웨이스트’ 주목
쓰레기 발생 줄이는 ‘제로웨이스트숍’ 부산 10곳 운영 중
친환경 제품 판매, ‘용기’ 내서 사 가는 리필 스테이션 등

부산 북구 화명동 제로웨이스트숍 ‘마플상회’에는 세제를 필요한 만큼 덜어서 살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이 있다. 부산 북구 화명동 제로웨이스트숍 ‘마플상회’에는 세제를 필요한 만큼 덜어서 살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이 있다.

‘나의 조카들, 레일라와 키어런의 미래를 생각하며.’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쉬의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의 책장을 넘기면 가장 처음 만나는 문장이다. 타일러는 “젊은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이전 세대가 살았던 세상이 아니다. 지구 기온의 상승으로 모든 기반이 달라졌고 앞으로도 계속 달라질 것”이라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말한다. 기후위기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제로웨이스트’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쓰레기 없는 생활’ 제로웨이스트와 제로웨이스트숍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말 그대로 쓰레기 배출량이 ‘0’이라는 뜻이다.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해양·대기로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 생산·소비·재사용·회수를 통해 자원을 보존하고 재활용하는 것이다.

최근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로웨이스트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미닝아웃(미닝+커밍아웃, 의식소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에게 제로웨이스트는 ‘힙’한 문화가 됐다. 제로웨이스트숍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물건들을 판다.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 재활용이 잘 안되는 플라스틱 튜브에 든 치약 대신 고체 치약, 플라스틱 통 대신 스테인리스 통,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하는 수세미 대신 천연 수세미 등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생산 과정부터 포함 물질과 사용 이후까지 쓰레기 발생을 최대한 줄인 것들이다. 샴푸, 스킨, 로션 등 화장품류와 차, 비건 쿠키, 시리얼, 곡물 등 식품도 있다.


마플상회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마플상회에서 팔고 있는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제품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부산의 제로웨이스트숍은 북구 덕천동의 ‘천연제작소’ 1곳이었으나 이후 9곳이 더 늘어 10곳이 운영 중이다. 지난해 7월 북구 화명동에 마플상회를 연 박인혜 씨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의 크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사려면 인터넷으로 배송 주문하거나 다른 동네까지 찾아가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쉽게 물건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겼다”며 상점을 연 이유를 설명했다. 마플상회를 함께 운영 중인 김민경 씨는 “중학교 환경 동아리에서 매장을 찾아오고 강의 요청이 늘고 있어 최근 학교와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진 걸 느낀다”며 “너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더 실감하고 실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플상회에서 인기 있는 제품은 리필 스테이션의 세제 종류다. 리필 스테이션은 ‘용기’를 내야 하는 코너. 직접 가져온 용기에 원하는 만큼 덜어서 살 수 있도록 그램(g)으로 판매한다. 소량씩 살 수 있으니 집에 재어 놓지 않아도 되고 체험해 보기에도 좋다.


전국 최초 환경부 지정 ‘녹색특화매장’인 부산YWCA생활협동조합. 전국 최초 환경부 지정 ‘녹색특화매장’인 부산YWCA생활협동조합.

부산YWCA생활협동조합에서는 농산물을 포장재 없이 판매하고 있다. 부산YWCA생활협동조합에서는 농산물을 포장재 없이 판매하고 있다.

부산YWCA생활협동조합은 전국 최초 환경부 지정 ‘녹색특화매장’이다.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제품과 리필 스테이션을 갖추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포장하지 않고 파는 농산물이다. 양파, 사과, 감자 등 수확 철에 따라 무포장 판매 농산물은 달라진다. 생산지에서 ‘벌크’로 받아 와서 포장 없이 팔고 있다. 생산지에서부터 ‘최소 포장’을 하도록 노력 중이다.

백성희 부산YWCA생협 상무이사는 “생산 단계부터 제로웨이스트가 돼야 한다”며 “개인 습관과 기업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제로웨이스트숍이 많이 늘긴 했지만 아직은 북구 등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며 “물건과 사람이 이동할 때의 탄소발자국을 고려하면 모든 지역에 골고루 있는 게 이상적이다.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다”고 지적했다.



■자원순환활동, 멸.종.위기 캠페인, 일회용컵 어택

“종이팩은 종이가 아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15.8%(2020년 기준)에 그친다. 그래서 천연펄프를 만드는 공장은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국 제로웨이스트 가게 연대 모임 ‘도모도모’와 서울환경연합은 ‘멸.종.위기(멸균팩과 종이팩의 위기탈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도모도모’에 속한 시민들이 전국 지자체 229곳에 연락해 종이팩 선별과 수거 여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주민센터 중 4분의 1은 종이팩을 수거하지 않았다. 이들은 기업에 ‘제품 라벨에 종이팩 분리배출 방법 인쇄, 재활용 의무율 달성, 시민 홍보와 종이팩 회수 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개선, 종이팩 수거 선별업체에 분담금 지원, 선별지침 마련, 이행실적 관리감독’ 등을 요구한다. ‘멸.종.위기’ 홈페이지(carton.campaignus.me)에서 서명으로 캠페인에 동참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숍은 이렇게 종이팩처럼 재활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물품의 자원순환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종이팩(일반팩과 멸균팩)을 포함해 PP/PE 병뚜껑, 브리타 필터, 크레용 등을 회수해 재활용이 가능한 곳으로 보낸다. 일반팩은 냉장 보관이 필요한 우유, 주스 등에 사용하는 흰색 코팅 팩이며, 휴지로 재활용된다. 멸균팩은 상온 보관이 가능한 두유 등에 사용하는 팩으로, 은색 알루미늄 포일로 코팅돼 있다. 알루미늄은 팔레트로 만들고 종이는 키친타월이 된다. 마플상회는 종이팩은 동사무소에서 휴지로 바꾸고 멸균팩은 펄프 공장으로 보낸다. 버려진 크레파스는 여러 색을 내는 ‘리크레용’으로 돌아온다. 재활용품을 업체로 보내는 배송 비용은 상점에서 부담하고 있다. 마플상회는 “지구를 위해 하는 일이라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플상회의 자원순환센터. 마플상회의 자원순환센터.

환경단체와 알맹상점 등 전국 제로웨이스트숍은 ‘일회용컵 어택’도 진행 중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일이 당초 6월 10일에서 12월 1일로 6개월 유예된 데 대한 ‘액션’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란 카페에서 음료를 살 때 일회용컵에 보증금을 부과하는 정책으로 음료 구매 시 보증금 300원을 결제하고 추후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이다. 연간 약 28억 개가 사용되는 일회용컵이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카페 프랜차이즈 업계의 반발로 미뤄졌다. 카페 프렌차이즈 본사와 환경부에 항의 이메일 보내는 서명 운동, 길에 버려진 일회용 컵을 줍는 컵줍깅, 본사로 돌려보내는 컵어택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제로웨이스트는 단순히 개인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서, 기후위기의 문제를 정치적·사회적 과제로 연결하는 목소리가 되고 있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고금숙·이주은·양래교 지음)에서는 가치 소비 방향성의 주권은 기업이 아니라 개개인 소비자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행동하는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선 시민들의 끊임없는 관심이 필수다.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은 소비자로부터 나온다. 개인이 어떻게 지갑을 여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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