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총기의 산실, 부산조병창을 아시나요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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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인in人] 14. 자주국방의 결정체 부산조병창

1958년 12월 부산 동래 부산조병창 준공식에 참석한 이승만(가운데 중절모) 초대 대통령이 탄약을 살펴보고 있다. KTV 화면 캡처 1958년 12월 부산 동래 부산조병창 준공식에 참석한 이승만(가운데 중절모) 초대 대통령이 탄약을 살펴보고 있다. KTV 화면 캡처

부산이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원조이자, 산실이었다.

부산은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자주국방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바로 부산조병창에서 우리 손으로 직접 소화기를 생산한 것이다. 태극 문양이 선명한 대한식소총과 국산 광복식(부진제) 콜트 권총이 부산조병창에서 탄생했다. 부산조병창은 1950년 공식 설립 당시에는 대한금속회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산조병창은 일제가 세운 병기수리창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블로거로 활동한 '동고동락'은 온라인 기고에서 "일본 군부가 세운 병기수리창과 일제 적산기업인 부산진제철소의 합병으로 부산조병창이 탄생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부산조병창에서 만든 국산 콜트 권총. '광복식' '부진제'란 각인이 선명하다. 이재희 기자 부산조병창에서 만든 국산 콜트 권총. '광복식' '부진제'란 각인이 선명하다. 이재희 기자

정부 기록을 보면 1948년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후 육군병기공창을 설치한다. 주로 일제의 공장 시설을 이용한 것인데 1949년 병기행정본부가 육군병기공창을 흡수해 다음 해인 1950년 6월 15일 부산에 제1조병창을 설치하고 운영한다. 또 인천에는 제2조병창을 세운다.

부산조병창은 초기엔 총기를 생산하기보다는 일제 99식소총의 구경 전환 작업 등을 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군이 한국 조병창에서 7.7mm 탄환을 쓰는 일제 99식소총의 구경을 미군 7.62mm 탄환에 적합하게 개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뜻밖에 부산조병창에서 미 콜트 권총의 국산화가 이루어진다. 이때 만든 권총의 총신에 '광복식·부진제'라는 음각 명문이 선명하다. '부진제'란 당시 부산조병창이 있던 부산진(서면)에서 제작한 권총이란 뜻이다.

한국전쟁 중에 국군이 운영한 부산조병창은 주로 병기 수리나 수류탄 제조 등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951년 11월 30일 새벽 3시 30분께 부산진구 서면 부산조병창(국군 제1조병창)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다. 이 화재로 조병창은 물론 인근 가옥 40여 채가 전소됐다.

이후 부산조병창은 미8군의 도움을 받아 화재 발생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재건한다. <부산일보> 1951년 12일 18일 자 신문에 따르면 '화마를 입은 조병창은 미8군의 적극적인 원조와 협조를 받아 재건되었다'고 한다.

전쟁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복식 소총. 부산조병창에서 만들었다. 전쟁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복식 소총. 부산조병창에서 만들었다.

상황을 종합하면 화재로 탄 조병창을 재건한 곳에서 대한식소총이 탄생했다. 전쟁기념관에 있는 대한식 소총 4호는 단기 4285년(1952년) 6월 10일 제작됐고, 대한식소총 7호는 같은 해 8월 20일 제조됐기에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대한식소총은 대한민국 최초 국내 제작 볼트액션식(총을 쏜 뒤 손으로 볼트를 후퇴시켜 탄피를 빼내고 다시 손으로 밀며 장전하는 방식) 소총으로 일제 99식소총과 미국 M1개런드 소총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1952년 부산의 조병창을 분리해 제1조병창을 총포 중심 공장, 제2조병창을 탄약과 화약 공장으로 분리해 운영한다. 같은 해 10월 1일 제1·2조병창은 국방부 조병창으로 전환한다.

대한식소총은 소량만 생산한 뒤 중단했는데 한국전쟁 와중이라 미국이 M1소총과 칼빈소총을 국군에 제공했기에 굳이 대한식소총을 독자 생산을 할 근거가 약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식소총은 1952년 10월 11일 열린 시범 사격회에서 일본 99식소총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60년 11월 장면 총리도 부산 동래 부산조병창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격려했다. KTV 화면 캡처 1960년 11월 장면 총리도 부산 동래 부산조병창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격려했다. KTV 화면 캡처

이후 부산조병창은 소화기 전문 기관으로 더욱 발전한다. 1958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동래 조병창 준공식에 방문해 친필로 쓴 '건설' 비석 제막식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KTV 화면 기록 등을 보면 국산 탄환 등을 자체 생산한 것을 알 수 있다. 동래구(현 해운대구) 부산조병창은 풍산금속의 전신으로 짐작된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소총 국산화를 위해 기장군 철마면에 별도의 국방부 조병창을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국산 소화기 제작 전문 기관이 탄생한다.

기장군 철마 국방부 조병창은 도미기사를 통해 M16 국산화에 성공했다. 국방부 조병창은 1981년 대우정밀로 민영화됐다. 대우정밀은 오늘날 SNT모티브로 이어진다.


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인 국산 1호 M16소총. 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인 국산 1호 M16소총.

최초의 국산 제식소총 M16 생산과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국산 소총 K2를 만든 SNT모티브는 선조의 얼과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자주국방의 산실이자 글로벌 소화기 전문 제조업체로 우뚝 서게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첨단 기술과 자주국방 정신을 갖춘 SNT모티브는 고려 때부터 조선을 거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우리 화약무기 제작 기술과 선열의 빛난 얼이 오롯이 담긴 결정체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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