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만 원의 행복’마저 앗아간 ‘가혹한 고물가’
“가게 이름이 ‘만 원의 행복’인데, 만 원이 무너졌어요.”
9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에서 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미나(63) 씨는 물가 얘기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 씨는 노인 손님이 많은 것을 감안해 병어회, 멍게, 가오리무침 등 모든 안주를 1만 원으로 저렴하게 팔았다. 그러나 최근 물가 폭등으로 해산물 가격이 30%가량 오르면서 김 씨는 결국 가격 1만 원 장벽을 무너뜨렸다. 앞서 올해 초 그는 낙지볶음과 장어구이 메뉴 가격을 5000원씩 올렸다. 김 씨는 “가게 이름을 만 원의 행복이라고 해놓았는데 물가 따라 가격을 전부 올릴 순 없었다”라며 “이미 적자 본 지는 오래다. 이대로라면 가게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에 노년층과 저소득층 살림살이가 직격탄을 맞았다. 물가 급등에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이 자주 찾는 ‘저렴이 골목’들마저 가격의 둑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부전시장의 경우 2500원에 칼국수나 자장면을 먹을 수 있고, 1만 원으로 술안주 두 개까지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9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부전시장에선 예전 같은 가격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부전시장 칼국숫집 3곳이 2500원 받던 칼국수 가격을 최근 500원씩 올렸다.
먹거리 장터 서면 ‘저렴이 골목’
물가급등에 음식값 줄줄이 인상
모든 안주 1만 원에 판 실내포차
재룟값 폭등에 간판 바꿔야 할 판
2500원짜리 칼국수 이젠 ‘옛말’
이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성 모(69) 씨는 “집에서 먹는 것도 만만찮아 저렴한 부전시장에서 끼니와 술을 해결한다”며 “이곳 밥값마저 오르면 밥 먹기가 무서워질 것”이라며 한숨 쉬었다.
단골들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 상인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주점 ‘녹두밭 빈대떡집’을 운영하는 한순남(70) 씨는 최근 기본안주로 내놓던 묵무침을 무생채로 바꿨다. 묵과 설탕 가격이 오르면서 하루 너덧 개씩 잘라 내는 묵값마저 부담스러워진 탓이다. 22만 원 하던 녹두 40kg 1포대가 최근 27만 원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빈대떡 가격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는 아직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한 씨는 “지난해 8년 만에 2000원을 올렸는데, 그조차도 단골들이 부담스러워했다”며 “가게를 찾는 어르신들 주머니가 가벼운데 힘들다고 가격을 올릴 수는 없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사하구 괴정동에서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이 모(62) 씨도 가격을 올리려다 포기했다. 이 씨는 “1kg에 2만 원 하던 삼겹살이 3만 원으로 오르고 식용유 값도 만만찮다. 1000원만 올려 받을까 생각했지만, 단골 어르신들 생각이 나 차마 못 올렸다”고 한탄했다.
물가 상승으로 모든 서민들이 밥값 부담을 호소하고 있지만 노년층과 저소득층에게 그 여파는 유독 가혹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는 소득의 40% 이상을 식료품이나 외식 등 식비로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월평균 가처분소득 84만 7039원 중 35만 7754원(42.2%)이 식비로 지출됐다.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밥값에만 쓴 것이다.
신라대 사회복지학부 손지현 교수는 “저소득층 노인은 소득이 적어 물가가 급등할 때 최저 생계비 대부분을 식비로 쓸 수밖에 없다”며 “물가인상률을 반영해서 최저 생계비 이하 노인들을 지원해주는 등 지자체가 정책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